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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il korea

문안사에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까지~(4월 2일)

4월 1일 만우절이 끝나갈 저녁 12시가 다 되갈 무렵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절에 가려는데 같이 갈래"

"방금 오금성당에서 9시 미사 보고 왔다~~~~"  "가자 가 ~~ 네비로 우리집 찍고 픽업와라~~"

그렇게 출발한 4월 2일 새벽녘 경춘고속도로를 달려간다.  

 휴게소에 들러 요기를 하려했지만 썰렁하기만 하다. 우동과 국밥을 시켜 먹고서는 인제방면까지 달려간다. 새벽녘 라디오에서는 80-90년대 노래들이 줄기차게 흘러간다.

새벽 2시 30분경 문안사 인근에 도착했지만 아침법회가 열리기까지는 2시간 정도가 남았다. 현리방면까지 가서 훼미리마트를 찾아 맥주 2캔과 육포 그리고 절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줄 개밥 하나를 사서 만인사 입구까지 간다.

문안사 입구에서 맥주 한잔씩 마시고 1시간여 둘이 노닥거리다.  아침 법회에 참석한다.

스님한분과 총무보살님 그리고 다른 한분이 아침기도에 참석중이시다. 한쪽 구석에서 병규와 108배를 한다. 조금씩 땀이난다. 그냥 병규가 하는 몸짓을 따라서 그데로 해본다.

아침기도가 끝나고 행자방에 앉아서 아침공양을 기다린다. 감자국에 여러나물을 곁들인 공양을 마치고 사찰 근처를 산책을 했다. 눈이 녹아 푸석한 길에 산등성은 아직 눈자락이 남아있다. 돌아와서 큰스님께 인사를 하고 떠나려니, 하시던 작업을 조금 도와 달라고 하신다. 도움을 드리고 나니 자리에 앉으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이명박이 4대강 파헤치고 뻘짓을 하고 ...... " 이런 이야기와 건강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신다. 기억에 남는 건 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단식을 한단다. 스님도 지금 몸이 아파 금식중이시란다.

그렇게 9시가 조금 넘어서 문안사에서 나와 길을 떠난다.

찜질방 같은데서 잠시 쉬다가 마석모란공원에 가기로 했다. 조금씩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평인근에서 찜질방을 검색하니 유명산 허브 찜질방이 나온다.

향기가득한 허브차와 찜질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모란공원을 향해 출발한다.

 

 마석 모란 민족 민주열사 희생자 묘역... 90년 초반 망월동의 기억이 다시 다가 온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깊은 영면을 취하고 계신다. 한분 한분 자신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잠들어 계신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진다.

 묘역 중간에 추모비에서 부터 한곳 한곳을 둘러본다. 분홍빛 안내판이 달린 묘역은 열사묘역이고 일반 묘역과 혼재되어 있다. 분홍빛 안내판에는 돌아가신 열사분의 연혁이 담겨져 있다.

추모비 옆에 계훈제 선생님이 잠들어 계신다. 

 

최근 돌아가신 노동세상의 이춘자 선생의 묘에는 아직 새로 입힌 잔디의 떼가 자라지 않았다.

 왼쪽 언덕으로 김근태 선생의 묘가 소박하게 마련되어 있다. 지금 계신 곳에서는 어떠한 고문도 없는 세상이길 바랄뿐이다.

 91년 대한극장앞에서 보았던, 그리고 노제를 치르며 거리에서 보았던, 망월동의 무덤에서 보았던 김귀정열사도 이곳에 묻혀 있었다. 시간은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곱다.

 억울한 주검, 김기설 열사도 더이상 유서대필이라는 말도 안되는 만행에 더이상 피해입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학교 1학년 처음으로 알게되었던 전태일 열사의 묘역.... 지금은 어머님이 그 뒤에서 그를 지켜보고 계신다.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신 이소선여사님이 죽어서도 자식 뒤를 지켜보고 계신다.

 용산 남일당에서 돌아가신 5분의 묘역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뜨거운 화마 속에서 억울하게 억울하게 외치던 소리가 다섯분이 함께 묻혀 있는 이곳에서도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 최근 박용길 장로님과 함께 합장을 한 듯 봉분에 잔디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 장로님의 비석은 아직 없다. 군대에서 이등병때 문목사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남몰래 흘렸던 눈물의 기억이 난다. 비석 옆에 함은 깨져 있어서 속상했다.  늦봄의 기억이 나의 90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둘러보는 길에 나와 같은 이름의 열사분의 이름이 보인다. 19살에 청량리 맘모스호텔(지금의 롯데백화점 자리)에서 반정부 구호를 회치고 투신하셨다고 한다.  돌아보면 21살의 YH여공 부터 꽃다운 청춘들이 많이도 지고 또 졌다.

 

 

비는 계속 내리고 5시 30분 폐장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선다. 망월동의 무거웠던 짐이 지금은 모란공원에 넘어와 있는 듯 하다.

서울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놈을 찾아간다. 교수실 차창 밖으로 학생들은 빗줄기 속에 셔틀버스를 타려고 한참을 줄을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