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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3 - 사모스에서 바르바델로까지 (4월 12일, 20km)

습관은 무섭다. 늦잠을 자겠다고 맘을 먹고도 8시가 조금넘자 더 잠을 잘 수가 없다. 농담처럼 그냥 하루 더 여기 묶을까? 하고 말해보지만 다가온 목적지 만큼 마음도 덩달아 빨리 길을 가야한다는 걸 안다.

사모스 - 텍시오스 - 알데아 드 알바호 - 아기아다 - 팔로마 이 레냐 - 사리아 - 바르바델로

 아래층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을 한다. 사모스 수도원을 두루 살펴보고 가고 싶지만 어제 기도회에서 둘러본 것에 만족하고 길을 걷는다. 익숙해진 하루 일과로 늦잠을 자지도 못하고 9시 30분이 넘어서 사모스를 벗어난다. 차도 옆의 인도를 따라 계속 걷는다. 어제 무리한 탓에 아침이지만 조금은 힘이든다.
인수씨는 이미 출발을 한 듯하다. 길을 걷다 보면 만날지도 모르지만 이 시간에 이 길을 걷는 이는 우리가 전부 인 듯 하다.

  

사모스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차도변으로 마을이 하나 나온다. 약국이 있으면 약간의 약품을 살까 했는데 눈에 띄지 않는다. 한가로워 보이는 마을의 외곽에 산티아고 성인의 상에서 간단히 사진만을 찍고 지나쳐간다.
오브리오강을 따라 잠시 도로를 벗어나 길을 걷다가 다시 차도를 가로질러 나타난 언덕길을 따라 길을 걸어 오른다.

작은 마을들이 계속 이어진다. 숲과 시냇물 그리고 작은 언덕이 계속 이어지는 길. 순례자는 한명도 보이지 않고 어제의 피로감은 오전 내내 이어진다. 작은 마을의 둔턱의 폐가에 잠시 쉬어보기도 하지만 목적지는 보이지 않는 숲속의 행군이다. 길을 가다 집앞에 자판기를 내어둔 집이 있어 혹시 음료수가 나올까 뒤져보았지만, 전기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아직 비수기라 그런가 보다. 순찰을 도는 경찰차의 모습외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걸어간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멀리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마을 초입에 벌판에 몇몇 순례자들이 가방을 내리깔고 낮잠을 자고 있다. 낳선 사람들이다. 그냥 계속 길을 걷다 보니 주도로와 합류점까지 도착하게 된다. 트라이카스텔로에서 나뉘어진 두 길이 합류하는 곳이다. 너무 쉼없이 걸어와서 잠시 카페에 쉬었다 가려고 했지만 제대로 문을 연 곳이 없다.
사리아로 연결된 주도로를 따라 일직선 길을 걷는다. 아주 예쁜 정원을 가진 알베르게 팔로마 이 레냐가 눈에 들어온다. 자판기에서 탄산음료라도 뽑아 먹을까 했는데. 김여사가 그냥 가자고 한다. 하긴 사리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일직선으로 뻣은 길이라 북유럽 친구들이 몇명 멀리 보인다. 손인사를 하고 사리아를 향해 걸어간다.

사리아 초입에 있는 관광안내소 같은 곳에서 소변을 보고 사리아의 구시가를 향해 들어간다.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려니 인수씨가 보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인수씨를 불러서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보다 1-2시간 먼저 출발한듯 한데 벌써 힘이 많이 드는 모습이다. (인수씨는 체력은 좋지만 지구력과 보폭이 우리보다 좀 덜하다)

구시가 안쪽의 식당에서 다양한 메뉴를 시켜 정찬을 먹는다. 입구의 테라스에 앉아서 먹는 밥이라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야 한다. 몇명은 사리에서 머물거라고 하고 몇명은 더 갈꺼라고 한다. 밥을 먹고 또 수다를 떨면서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인수씨와 함께 사리아 다음의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사리아는 순례자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인 100킬로를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라 많은 순례자들이 단기간의 과정으로 이곳에서 출발을 한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은 휴가를 내어 많이 걷는다. 이제 부터는 알베르게 등록도 선착순인 관계로 레이스가 펼쳐진다. 그리고 사리아 이후에는 대중교통 등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룰이다.

2시 30분쯤 사리아의 언덕을 넘어 다음마을로 출발을 했다. 셀로이로강도 건너고 철길을 건너서 나지막한 산등성과 들판을 따라 걷는다. 오후의 늦은 햇살이 뜨겁지만 점심을 먹으며 제법 오래 쉬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걷는다.
간만에 셋이 걷지만 오르고 내릴때는 각자의 보폭에 의지해서 그냥 걷는 방법 밖에는 없다.

3시가 조금 지나서 오늘의 목적지 바르바델로가 보인다. 마을의 초입에는 팬션과 자판기만으로 가득찬 순례자용 휴게실도 있다. 음료 하나를 뽑고 공립알베르게를 찾아 나선다. 마을의 끝자락에 외진 곳에 예전의 학교를 개조한 알베르게가 있다. 이미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2층 침대만 다닥다닥 붙은 채 시설이 굉장히 낙후되 있다. 관리자가 와야 아래층 방을 열수 있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관리인도 없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알베 언덕 위에 팬션을 가보았다. 가격은 좀 비싸더라도 공립은 좀 아니다 싶어 물어보러가니 3인이 묶을 수 없다고 한다. 내려와서 아래편에 보이는 곳도 알베르게 같으니 김여사보러 가보라니 둘이서 갔다온다.
방이 있으며 시설도 좋다고 한다. 바로 언덕 아래의 사설 알베르게 O Pombal로 내려갔다. 자신의 농가주택과 알베르게를 함께 운영하는데 시설도 갈끔하고 주방과 기타 시설도 다 좋다. 거기다 냉장고에는 와인과 맥주가 가득하다.

이 큰 알베르게에 오늘 손님은 우리 3명 뿐이다. 문제는 인근에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주방기구를 체크하고 주인아저씨에게 가게가 어디 있냐니까? 3-4킬로를 가야한다고 한다. 택시를 부를까 말까 하다 자전거 혹시 있냐고 물어보니 자전거를 빌려주신다고 한다. 일단 사모님들은 햇살 좋은 날 침낭널기와 빨래하기로 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간다.
자전거길은 그리 쉽지 않은 언덕을 2-3개 넘어 한마을 건너 차도변의 간이 가게로 가는 것이다. 일단 가보니 파는 물건이 마땅한것이 없다. 계란 쌀 닭을 사고 야채는 하나도 사지 못했다. 거기에 엄청난 바가지를 쒸운다. 대안이 없으니 그냥 산다.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와인과 맥주를 사고 아저시에게 말라비튼 마늘과 약간의 싹튼 감자 등을 얻는다. 닭은 삶아서 탕을 만들었지만 많이 질겼다. 감자와 통조림요리 등을 하고 밥을 해서 만찬을 즐긴다. 아직 우리에게는 고추장이 남아있지 않은가?
술이 모자라서 주인댁에 가서 다시 술 몇병을 사서 더 먹는다.
큰 알베르게에 한국사람 세명이서 자유롭게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마저 수다를 떨면서 밤을 지세운다.
불행이 가져다 준 행운인것 같다. 공립알베르게에 자리가 없었다는게 차라리 다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