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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5 - 곤사르에서 멜리데까지 (4월 14일, 36km)

산티아고가 가까와지면서 많은 것이 혼란스럽다. 도착을 언제해서 어디에 묶을 것인가? 남은 일정은 어떻게 조율할까? 늘어난 사람들 속에서 또 어떻게 해야할까? 정작 이 길을 정리하면서 조용히 마무리 해야하지만, 부족한 사람은 뭐를 해도 티가 나는 것 같다.



인수씨를 꼬셔서 오늘 가방을 운송서비스에 맡기고 그냥 빈손으로 걷자고 했다. 사리아 이후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이러한 운송서비스를 하는 전단이 알베르게에 가득하다. 5-7유로 정도면 하루 종일 편안한 걸음을 할 수 있다. 가방을 보내는 대신 조금 긴 일정을 잡고 열기가 날꺼라 기대했지만 오스피딸 마을을 지나 고속도로를 지나는 동안 안개속의 추위는 더욱 거세졌다. 벤타스 데 나온 마을의 작은 바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며 따스한 음료를 마시고서야 추위는 가시기 시작했다.

바에서 몸을 녹이며 조금 여유있게 출발하자. 조금씩 대지의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옅은 안개 속에 멀리 개사육장의 개소리를 들으며 언덕을 넘는다.

갈라시아 지역의 길은 확실히 우리나라 숲길과 많이 비슷하다. 그러나 그 전 지역에서 받던 친절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그래도 나무와 숲과 구릉으로 이어진 길을 가방 없이 걷고 있자니 조금은 상쾌하다. 가방이 없어서인지 인수씨도 잘 걷는다.

집집마다 있는 곡식 건조대가 인상적이다. 갈라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것으로 건조대의 크기와 모양으로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한다. 어떤 집은 벽돌로 어떤 집은 널판지로 모든 시골집마다 하나씩의 건조대를 꾸미고 있다.


작은 마을을 따라 이어진 숲길을 계속 걸어간다. 포르토스 발로스 마물리아 브레아야 마을을 거치면서 셋이 함께 묵주기도를 하면서 쉬엄 쉬엄 길을 걷는다.
어느덧 로사리오봉을 넘어 팔라스데레이 마을에 다다른다. 제법 큰 마을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많은 식당중에 차도 건너편의 콘세요 광장 인근의 내리막에 있는 깔끔한 식당에서 보까디요와 햄버거등을 주문한다. 그사이 김여사는 약국에 가서 몇가지 약품을 사온다. 
식사를 하자니 몇몇 순례자들이 지나가거나 이 마을에 묶을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아직 멜리데까지는 제법 남았는데 신발을 주섬주섬 묶고 다시 출발을 한다.

팔라스데이를 외곽의 작은 마을 광장에는 이쁜 순례자 조형이 있다. 나름 포즈를 취하는 두사람의 사진을 담고 힘차게 오후의 뜨거운 햇살 속에 걷기 시작한다.

캄파냐 마토 다리를 건너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허름한 공립알베르게가 나타난다. 두 여성분은 화장실에 용변을 보고 나는 자판기를 찾아보지만 그런 것은 없다. 알베르게를 지나는 길에 마을 이름을 보니 카사노바이다. 당당하게 사진을 찍어본다.
언덕을 넘으니 황소의길이라는 뜻의 포르토 데 보이스 벌판이 나온다. 과거 귀족간의 피비린내나는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는 데 지금은 그냥 목초지만 가득하다.

갈라시아 지역의 두개의 주인 루고주와 아코로냐주의 경계에 있는 마지막 루고주의 경계석의 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이틀거리 정도로 산티아고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가방이 없다는 이유로 벌써 30여킬로를 걸었다. 이미 3시가 다가올 무렵 마지막 숲길을 오른다. 이 숲을 벗어나면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차도와 이어진 산업지역을 벗어나 숲길을 조금 더 걷자니 마을이 나타난다. 멜리데 마을인가 하고 한껏 들떴었지만, 멜리데 마을 외곽의 푸렐로스이다. 마음같아서는 그냥 이곳에 묶고 싶다. 그러나 가방이 있는 곳은 앞으로 1. 2킬로를 더가야 한다.

푸렐로스를 벗어나 자갈길을 따라 올라가니 멜리데 마을이 보인다. 제법 큰 마을이다. 우선 가방을 찾아야하는데, 가방은 이 지역의 뽈뽀리아(뽈뽀전문점)에 맡긴다는 사실 외에는 알지 못한다. 뽈뽀리아를 물어 첫 가게에 같더니 자기네가 아니란다. 또 다른 뽈뽀리아를 찾으니 우리들의 가방이 좌악 깔려 있다.
가방을 찾은 시간은 이미 5시가 넘어간다. 뽈뽀를 먹고 싶지만 일단 알베르게에 등록을 하러 간다.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공립알베르게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시설은 좋지만 샤워장이 개방형이고 기타 주방 등의 편의 시설은 활용하기 힘들다. 큰 공립알베르게인 만큼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일단 씻고 뽈뽀를 먹으러 출발을 한다.
 

아까 가방을 찾은 곳까지 쩔뚝거리며 걸어간다. 뽈뽀를 와 와인을 주문하니 사발에 와인을 준다. 뽈뽀에 고추가루 같은 파푸리카소스를 왕창 쏫아 붇고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 마신다. 샐러드도 한접시 시켰지만 웬지 고양의 맛이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먹을 과일 등을 마트에서 산 후 알베르게로 돌아간다.
오늘 너무 많이 늦게까지 걸었다. 셋 모두 발목 발등이 장난이 아니다. 뽈뽀보다 이름난 산안토니오 광장의 성당들은 둘러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