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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2 - 오세브레이로에서 사모스까지 (4월 11일, 34km)

높은 장소에 서면 '더 높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물리적인 시야와 내면의 시야가 한껏 푸풀었던 밤이었다. 아주 먼곳에서 보이는 무엇인가를 작은 불빛으로 생각할 수도 다른 영적인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오세브레이로에서의 하루는 산티아고길을 걷는 순례자에게 충분한 사색을 준다.

오세브레이로 - 리냐레스 - 순례자 기념비 - 오스피탈 데 라 콘데사 - 산타마리아 데 포이아 - 폰프리아 - 바두에도 - 트라이카스텔라 - 사모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일단 창틈이나 문가로 나가 오늘의 일기를 체크한다. 문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고 엄청난 바람과 추위가 스며든다. 얼릉 들어와서 김여사에게 방한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최근에 가볍게 입고 걷기에 익숙샜지만 옷을 다 껴입어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알베르게를 나서려는 데 한 순례자(사실 행색이 아주 초라한) 한분이 문앞에서 침낭을 덥고 주무신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제 무슨일이 있었는지 스페인어로 마구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인거 같아 출발을 하는데 왠지 찝찝하다.

길을 나서자 정말 시야가 2-3미터도 안되는 안개와 운무가 가득하다. 길을 내려가려니 앞서 오던 사람이 되돌아 온다. 이 길이 맞냐고 나에게 묻는다. 분명 카미노마크가 이 방향이었다고 하니 되돌아서서 같이 내려간다.
시야는 어둠고 안개는 가득해 함께 걷기로 했다.

30대의 미국인 부부였다. 우리와 같은 생장에서 부터 출발한 부부인데 옷차림도 정갈하고 아직 너무 쌩쌩하다. 이 길에서 미국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데다, 스커트 차림으로 걷는 이쁘장한 언니와 잘생긴 젊은 아저씨는 정말 튼튼하게 잘 걷는다.
몇마디 농담을 하며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앞서기니 뒷서거니를 하며 길을 내려간다.
안개와 잘 보이지 않는 카미노마크로 반신반의하며 길을 내려간다.

첫번째 마을 리냐레스에 도착하면 몸을 녹이고 아침을 먹으려 했지만 아무 곳도 문이 열려 있지 않다. 어두운 마을을 그냥 지나쳐 간다. 다행이 출발전에 차한잔을 먹은게 다행이다 싶다.

산로케 고개를 오르니, 가이드 북이나 다른 산티아고의 영상에서 보아오던 순례자 기념비가 나타난다. 원래 전망이 좋은 곳이라지만 짙은 안개로 시야도 좁다. 스페인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간단하게 초코렛을 조금 먹어본다. 안개 속에서 한두명씩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추위 탓에 서둘러 길을 내려가 본다.
다행히 다음 마을인 콘데사에는 바가 열려 있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모두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낳익은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침에 함께 겄던 미국인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토스트를 주문한다.
사람들과의 대화속에 도난사건의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유대인 쌍둥이 친구들이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비용전체를 분실했고, 한나가 일단 100유로를 빌려줘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잠시후 쌍둥이 친구들도 바에 들어왔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 친구들은 스페인 사람 한명을 꼭 집어 의심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걷는 과정에 이런일이 없었는데 안쓰러운 마음보다 급 기분이 안좋아 졌다. 

안개를 끼고 내려오는 길에 계속 도난 사건에 대한 생각이 든다. 우선 도난 사건이라는 사실 자체가 기분이 나쁜데다 서로가 의지해서 오는 길에 서로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 친구들이 이스라엘에서 온 친구들이라 일부로 괴롭히려고 그런건 아닐지.... 아니면 갑작스레 많아진 스페인 사람들 중에 도둑이 있는 건 아닐지...
포이아 마을과 폰프리아 마을 지나가는데 한 할머니가 얇은 빵을 건네며 먹고 가라고 하신다.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하며 지나친다. (나중에 알게 된것은 저 빵을 먹으면 할머니가 돈을 내라고 한단다. 인수씨왈... 정말 불쾌했다)
조금은 속도를 내서 둘이 걷는다.

1시가 가까울 무렵 앤개와 운무가 거치고 가파지른 경사길을 밑으로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두에도 마을에 도착을 한다. 마을 초입에 문을 연 바에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한다.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쉬고 있자니 경찰차가 오고 그들도 차를 한잔 한다. 왠지 느낌은 도난사건과 관련되어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좋지 않다.

카스틸라아 지역을 벗어나 갈라시아 지역으로 들어서면 마을들이 굉장히 소박해진다. 가난한 시골의 풍경을 띄고 있다. 멀리 보이는 목적지들 사로 작은 집들이 군데군데 보이기 시작한다.

2시 30분 경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와 트라이카스텔라에 도착을 했다. 한때 성이 세채나 있었다는 곳이지만 마을 초입에서의 느낌은 황량하기 그지 없다. 마을 초입에 너른 벌판에 공립알베르게가 있고 여기저기 알베르게 홍보 벽판이 붙어 있다. 막상 여기서 묵으려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초입에 있는 바에가서 시원한 음료를 주문한다.
바에는 오늘 도둑으로 지목받은 스페인아저씨가 있다.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굉장히 황당해 한다. 하긴 우리도 이미 일주일정도 얼굴이 익은 사이이니 그의 항변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김여사와 바에서 의논을 한다. 트라이카스텔라에 묶을 것인지.. 13-4킬로 뒤의 사모스까지 갈것인지.. 아까 미국인 부부의 목적지 였다는 것에 경쟁심이 붙고, 왠지 어제의 도난사건이 기분을 엉망으로 만들어 이 마을에서 묶지 않기로 했다.
바를 나와 걷는 길에 유대인 쌍둥이들도 다시 만났다. 일이 잘 해결되길 빈다고 이야기 하고 걷는다.
마을의 끝자락에서 한나와 마리아등 북유럽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끝자락의 사설 알베르게에 묶기로 했단다. 우린 더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선다.

트라이카스텔라에서는 두갈래 길로 사리아까지 가는 길이 나뉜다. 우리는 사모스방향으로 차도를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차들도 많이 다니고 차도 옆의 순례자용도로도 제법 위험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길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차도를 따라 633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아침에 추위는 완전히 사라지고 찌는 더위와 구름 한점 없는 햇살은 쉬이 지치게 한다.
오르비오강을 따라 건너편에 순례자길이 보이고 우리는 걷너편 국도를 따라 걷다가 중간 마을쯤인 산크리스토보에서 순례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숲길로 다시 길을 걷다보니 작은 마을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쉴곳은 없다. 거기다 이 숲길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계속 이어진다. 4-5킬로만 더 가면 사모사가 도착할꺼 같은데 시간은 늦어지고 체력은 완전히 고갈이다.
김여사와 묵주기도를 외우며 힘을내어 걸어보지만 정말 기운은 점점 빠지고 그냥 주저 앉고 싶다. 차라리 차도를 따라 갔으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했을텐데... 김여사도 슬슬 짜증을 내고 걸음 속도도 엄청 느려진다. 사람들을 믿지 않고 이 길까지 온 우리를 벌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렌체 언덕을 오르는 길에서는 정말 눈물이 날꺼 같았다.

렌체언덕에 오르니 멀리 사모스가 보인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이 마을의 근간을 이루는 곳이다. 다왔다고 서로 잠시 부둥켜 안는다. 하지만 내리막도 만만치 않다. 돌과 자갈이 발을 짓이기는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그래도 목적지가 보인다는 안도감에 몸을 질질 끌며 내려간다.
지금까지의 순례길에서 가장 힘든 순간인것 같다. 마을로 내려와 가이드북을 살펴보니 수도원의 공립시설과 사설시설의 설명이 있는데 현재 우리의 상태로 공립은 조금 무리인거 같았다.
길에서 만난 한 노부부의 설명으로 내려온 길의 반대편으로 가보니 사설알베르게 중 한곳은 문을 닫았고 한곳은 꽉찼다고 한다. 공립의 시설은 큰 방에 그냥 침대만 줄지어 서있다.
공립 앞의 호텔(사실은 호스텔 수준임)의 가격을 물어보니 35유로에 더블룸이다. 오늘 하루의 노고에 충분히 이정도 가격은 지불해야지 하면서 묵겠다고 카드로 저녁식사까지 결제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2층의 방으로 안내 받아 들어가서 짐을 내던지듯 던지고 방에 딸린 화장실과 침구류를 보는 순간 김여사가 눈물을 흘린다. 참 별것도 아닌 일인데 침낭없이 따스한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는 이런 방 하나에 감격을 한 것이다.
사실 한국의 여관방 수준의 이런 방 하나에 감격을 하는 우리는 한달 사이 많은 일을 겪은듯한 느낌이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물집이 잡혔다. 씻고 나서 여기저기 오늘은 상처 투성이다.
정신차리고 저녁을 기다리다 보니 와이파이가 잡힌다. 트위터를 보니 인수씨가 사모스에서 트위터를 오린글이 보인다. 헉 하면서 급하게 인수씨에게 트윗 메세지를 보냈다. 우리도 사모스라고... 어느 호텔에 묶고 있다고...

트위터로 서로 연락을 하고 호텔의입구에서 인수씨를 레온이후 다시 만났다. 방으로 와서 한참 수다를 떨고 함께 미사에 참석한다.
사모스는 7시30분에 수도사들과 함께 그레고리한 성가와 함께 기도회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성가는 그다지 웅장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다.
미사를 마치고 호텔 1층의 바에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 물론 와인 몇병을 더 주문해서 인수씨가 묶고 있는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10가 넘어서 까지 수다를 떨며 술도 먹었다.

호텔 방 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내일 하루는 늦잠을 자기로 했다. 알베르게 처럼 8시이전에 무조건 나가야 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잃고 무엇인가를 되찾은 듯한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