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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0 - 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까지 (4월 9일, 25km)

산티아고까지 200Km 라고 적혀있는 이정표가 알베르게 안에 붙어있다. 마지막으로 높은 산을 하나만 더 넘으면 이제는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라시아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사도를 영접하려는 것인지 나를 찾을 것인지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 지 알 수 없다. 멈춰서면 떠오르는 물음표 하지만 걸음을 걷기 시작하면 물음표 같은 것은 사라진다.

폰페라다 - 푸엔테스 누에바스 - 캄포나라야 - 카카벨로스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아침에 일어나 어제 남은 밥을 긇여서 먹고 가려는데 문앞이 소란스럽다. 한나가 엄청나게 짜증을 내고 있다. 어제 저녁늦게 까지 순례자와 술을 먹은 알베르게 관리자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문이 잠겨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2층에서 자고 있는 오스피딸로가 내려오고 결국 문이 열린다. 
 

여간 미안해 하지 않는 오스피딸로의 환송을 받으며 알베르게를 나선다. 조금 지나자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난다. 이른 토요일 아침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따각따각 스틱소리를 내며 걷는 우리 둘 뿐이다. 

 구시가에 들어가자 폰페라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탬플기사단의 성이 나타났다. 온전히 보존된 성은 이른시간이라 관람할 수 없었지만 외벽과 내성 모두 멋진 위용을 내뿜고 있다.

 

폰페라다는 순례자의 보호로 부터 중세에 석탄과 철 광산의 중요한 거점이었다고 한다. 구시가는 탬플기사단 성과 함께 중세의 엔시나 대성당과 비에로스박물관등 다양한 과거의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도시였다. 어제 조금 피로가 들했다면 한번쯤 둘러 보아도 좋았을거 같았다는 아쉬움이 생겼다. 

한참을 걷다 보니 한나가 되돌아 온다. 카메라를 알베르게에 두고 온거 같다고 한다. 구시가를 벗어나 큰길을 따라가는데 나름 도시의 규모를 가진 곳이라 외곽길에서 카미노마크를 찾기가 어려워 진다. 스위스 순례자인 도리스는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본다. 맞는거 같다고 이야기 하니 우리 뒤를 따라온다.

폰페레다 외곽길에서는 아파트 단지 같은 곳을 통과한다. 이쁜 성모상을 앞에둔 콤포스티야성당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걷는다. 이제 완전히 외곽으로 빠져 나오니 작은 위성마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콜롬브리아노스 예배당이 있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니 바 앞의 테이블에 순례자들이 한두명 앉아 있다. 우리도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기에 간단하게 아침메뉴인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해서 먹는다. 어느덧 야외 테이블을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토스트와 버터 커피를 마시며 또 하나의 도시를 벗어났음에 안도하는 것 같다. 몇일간 길에서 조금씩 눈인사를 한사람들끼리 이제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푸엔테스 누에바스라는 작은 마을에는 마을의 문앞의 장식으로 요정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채롭다. 집을 꾸미면서도 문앞에 카미노 마크까지 직접 달아 놓은 모습이 고마웠다. 캄포나라야는 언제 나오나 언제 나오나 노래를 하다 보니 결국 캄포나라야라는 차도를 따라 길게 뻣은 마을이 나온다.
갑자기 쌩둥맞은 가벼운 가방 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나 바에 자리를 잡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었는데 금토일 휴가차 짧은 거리를 걷는 듯했다. (호텔에서 투숙하며 카미노를 관광처럼 걷는 그들의 모습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토요일인데도 우체국이 문을 열고 있다. 미리 써놓은 엽서 몇장을 부치고 우표를 10여장 산다. 그리고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고속도로를 가로지르고 작은 벌레들이 얼굴앞에서 윙윙거리는 습지 같은 곳을 지나니 언덕 아래로 카카벨로스가 보인다.

오늘 최고의 난관은 더위였다. 분지지대라서 더욱 더위가 느껴지는 것 같다. 카카벨로스에 들어서면서 마을의 인도에 차양이 처져있던 것이 너무 방가웠다. 그늘 길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니 너무 반가웠다. 점심을 먹기위해 문이 열려진 몇개의 바를 지나 마을 안쪽에 작은 카페에 들어간다.
카카벨로스는 마을의 축제가 한참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카페의 여주인 딸은 빨간 스페인 치마를 입고 가장무도회라도 나가려는 듯 신나한다. 맛있는 것을 먹자며 이것저것 주문하고 맥주를 두잔을 주문해 먹자니 옆에서 뽈뽀(문어고기)를 너무나 맛나게 먹는다. 이미 주문은 끝났으니..ㅜㅜ
마을의 축제를 보며 이곳에 머물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이곳에 머물경우 다음날 오세브레이로로 오르는데 문제가 많을 것 같아 그냥 걷기로 한다.

카카멜로스를 나오니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뜨거운 태양에 2틀간 30킬로씩 걷다보니 오늘은 다리에 신호가 크게 온다.
차도를 따라 난길을 차들도 많이 다닌다. 오르막을 따라 오르다보니  아까 큰잔으로 맥주를 먹어서인지 화장실을 가야할 거 같다고 한다. 피에로스마을이 지도에 있어 가보았더니 작은 몇채의 집이 전부이다. 급한김에 한 아주머니를 붙잡고 말도 안돼는 스페인어로 그집으로 들어가 김여사는 해결을 했다. 물론 나야 길에서..
이 마을에서 부터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차도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금새 바로 흙발이 나부끼는 포도나무 밭사이의 길을 계속해서 오르고 내린다. 오늘은 컨디션이 영 엉망이다. 입에서 욕이 수십번도 더 나온다.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돼어서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마을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을 초입의 비포장 도로는 차한대만 지나가도 먼지가 안개를 이루고 잇었다. 초입에 공립알베르게에 가니 시설이 너무 형편이 없다. 게다가 아무도 없다. 분명 우리앞으로 많은 사람이 갔는데 여기는 아닌가 보다 하고 더 나아간다. 앏베르게를 찾으면서 김여사와 약간의 실갱이를 벌인다. 힘드니까 아무데나 가자는 나와 좀 좋은데로 가자는 김여사 사이의 작은 충돌이다.

결국 마을 외곽의 사설 알베르게로 가기로했다. 막상 들어가보니 깔끔하고 친절하다. 조금 많이 지쳐서 3인실을 사용하기로 하고(결국 3인실을 둘이썼다) 다인실을 둘러보니 마리아와 한나, 올리 그리고 유대인쌍둥이 등 익숙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빨래를 돌리고 잠시 쉬다보니, 마리아와 한나가 김여사에게 마사지를 권한다. 원래 레이키마사지가 유명한 마을이고 이 집 주인 아주머니가 마사지를 하시는데 너무 시원하다고 자랑이다. 김여사가 같이 받자고 하는데 난 됐다고 김여사만 받으라고 또 난 튕긴다. 한참 마사지를 받고 온 김여사가 너무 좋다면 내꺼까지 요금을 냈으니 받아야 한단다.
튼튼하신 주인아주머니에게 발목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마사지를 받는다. 악악~~캬악 소리만 몇번을 지르며 눈에서 눈물이 다 나왔다. 어깨며 다리며 누르는 힘이 장사다. 정말 아팠다 하지만 모든게 끝나는 순가 너무 편해졌다. 내생각엔 통증으로 다른 통증을 못느끼게 하는 마사지 같았다.

저녁 메뉴를 파는 곳이 인근에 없어서 마을 광장까지 걸어갔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산티아고성당과 산프란시스코 수도원 산니콜라스 성당 디비나 파스토라 수녀원  콜레히아타 성당 등 중세의 멋진 건물이 가득하다. 그런 만큼 많은 관광객과 그들을 맞이하는 식당이 즐비하다. 값싸 보이는 한곳에 앉아 둘이 식사를 주문했다. 큰 기대는 안했지만 별로 맛이 없었다. 다른 순례자들이 밥을 먹으러 오면서 우리쪽으로 오기에 맛없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말해야 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길에서 먹을 간식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둘이 차를 마시며 앉아서 쉬고 있다 보니 올리아저씨가 공연을 해주시겠다고 한다. 갑자기 손수 만드셨다는 다양한 악기들을 가방에서 꺼내시더니 공연을 시작하신다. 항상 말수도 적고 단촐한 가방에 사뿐이 걸어가던 올리의 가방에는 다양한 소품들이 들어있었다. 마치 거리의 악사처럼 공연을 하신다.
또 그렇게 산티아고의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