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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1 - 비아나에서 나바레테(3월 21일, 23km)


가방의 무게는 욕심과 비례하는 것 같다.
몇 일 전 가방을 풀면서 고심하는 모습의 쥴리의 모습(이 친구는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용도별로 묶어 놓은 짐을 각을 맞춰 세워 정리하느라 오랜 시간을 들인다)이 생각난다.
가방에서 무엇인가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조금이라도 가방의 무게를 줄이려고 혼자서 끙끙 거린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 중 두꺼운 비니루는 벗기고, 가이드북을 찢어서 지나온 길은 모조리 버린다. 그런다고 몇 킬로가 줄어들까 싶지만... 만약을 대비한다는 명목 하에 아직도 불필요한 물건들이 가방에 가득하다. 아직 나의 욕심이 가방 안에 가득하다.

비아나 - 카필라(카냐스저수지) - 칸타브리아 - 로그로뇨 - 플란타노(플란타노 호수) - 그라헤라봉 - 나바레테

안경이 없다. 다른 사람 침대까지 뒤져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출발 시간 때문에 더 지체할 수 없어 가방을 싸고 주방에 내려가 커피 한 잔을 타고, 자판기에서 달디단 빵을 사서 아침으로 먹는다.
시골 길만 걷던 나는 오늘 다시 커다란 도시를 통과해야 한다. 그 도시에서 불필요한 물건들을 모아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쳐야 한다.

멀리 로그로뇨의 모습이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갈대밭 사이로 카냐스 저수지 근처에 다다르자,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보인다. 저수지라기 보다는 습지 같은 이곳에서 헐거워진 신발끈과 무릎 보호대를 단단히 묶으며 잠시 쉰다.

한적한 습지를 벗어나자, 매연으로 탁한 공기, 건물들과 도로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차량으로 도시 부근에 왔음을 알 수 있다. 교차로 터널을 넘어가자.. 라리오하 주의 주도 로그로뇨로 들어간다는 인사를 잘 포장된 길과 새롭게 바뀐 카미노 이정표로 보여준다. 도시 외곽은 새로 개발을 하는 듯 여기저기 공터가 널려있다.

언덕길을 오르니 이제 도시가 눈 앞에 다가온다. 스페인의 와인 산지답게 도시 인근까지 포도밭이 즐비하다. 한참을 내려가니 몇 개의 판자집이 보인다. 집시들의 집처럼 보이는 허름한 이곳에서 한 할머니가 도장을 찍어주신다.
순례자에게 뭔가를 파는 집시인 줄 알고 경계했지만, 이 할머니는 대를 이어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에게 무화과와 물을 제공하며 봉사하는 분이라고 한다(지팡이를 만들어 나눠주던 파블로 할아버지와 함께 순례자에게 선행을 베풀었던 마리아할머니의 딸). 이런 모습들이 바로 카미노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온전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에브로강의 오른쪽 기슭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보니 강을 건너라는 마크가 눈에 들어온다.
강을 건너자마자 구시가의 초입에 지역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로그로뇨의  지도와 우체국 위치 등의 정보를 얻는다. 
 

여기저기 공사 중인 구시가 안으로 들어사자 카미노와 관련된 벽화와 상징들이 눈에 들어온다. 
말끔한 슈트차림의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기 어색해서, 잠시 바에라도 들릴 요량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다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앗싸!' 하면서 그 곳에서 햄버거,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문한다. 그릴에 직접 구워 만든 햄버거는 주인 아저씨가 오랜 시간(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우 푸드였다)이 걸렸지만 그 정성 때문인지 맛은 달콤하다. 매일 말라 비틀어진 바게트에 하몬만 먹다가, 따스하고 부드러운 햄버거라니 호사가 그지 없다.

맛나게 요기를 하고 광장 안으로 들어서자, 중세의 대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시골의 작은 성당들이 주는 그런 감동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진 몇 장을 찍고 그냥 지나친다.
이미 노란 화살표는 잃어버린 상태에서 도시의 중앙 큰 도로에 나서니, 우리의 모습이 그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더욱이 월요일 오전에 등산복에 가방과 스틱을 들고 걷는 두 동양인이라니..

간신히 길을 찾아 인포메이션 센터로 간다. 인포센터 앞의 순례자 모양의 동상에 폼도 잡아보고, 그 안에서 파는 작은 와인과 몇 가지 무게가 나가지 않는 기념품(이것도 바로 부칠 거다)을 사들고 우체국 찾기를 시작한다.

지도와 방향감각에 의지해 우체국을 찾아가다가, 대형 슈퍼마켓과 한국에서 너무나 익숙한 버거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사 먹은 햄버거가 조금 야속해진다. 조금 더 걷다가(김여사는 거리를 걸으며 정신을 못 차린다.) 대형슈퍼마켓에는 들어간다. 다양한 제품이 잘 정리된 진열대를 보니 눈이 휘둥그래진다. 단 열흘 만에 시골사람이 된 기분이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몇 바뀌를 돌아 산 물건은 거의 없다. 가방 무게도 그렇고 무엇을 사야될 지 모르겠다.

몇몇 영어를 할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 길을 물어 겨우 찾은 우체국에 들어가서 포스트박스를 하나 사고는 구석으로 가 둘의 가방을 쫘악 풀어 헤친다. 창피해도 어쩔 수 없었다(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했더니 익숙한 일인양 괜찮다고 한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찾는다. 여분의 등산복과 면티, 수건, 벨트쌕, 김여사 핸드폰, 성경책(이미 표지는 몇 일 전에 버렸다) 등을 찾아서 산티아고로 발송을 한다. 김여사가 내 배낭 한구석에 잃어 버린줄 알았던 안경을 찾아낸다. 와우! 다행이다. 망가진 데도 없다. 썬그라스 속의 안경은 저녁이 되면 잘 보이지 않고, 이곳에서 안경을 새로 맞추자면 얼마나 비싼데..  

아직 욕심이 남아서인지 그다지 가방은 많이 줄지는 않았지만 1~2킬로의 물건이라도 나의 가방에서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여행을 마칠 쯤 우리는 가방에서 더 줄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다시 화살표 찾기다. 우체국에서 한 블럭을 벗어나니 바로 카미노 마크가 보인다. 그러나 수도꼭지는 보이지 않는다. 걸어가다 또 대형 슈퍼에 들어간다. 라면모양의 파스타가 보여서 가져간 신라면 스프에 먹으려고 두 개, 땅콩, 인스턴트 음식과 물 등을 사서 가방에 넣으니 다시 가방 무게는 원위치를 찾는다. 어느새 내 왼쪽 복숭아뼈는 손을 대면 아플만큼 염증이 생겨서 자구책으로 내놓은 아이디어가 생리대를 몇 개 붙이자는 것이어서 코튼 생리대도 한 통 산다. 정~말 유용해서 그 뒤로도 몇 번 더 구입했다.

도시에서 이성을 잃었다. 대형 슈퍼에서의 장보기가 1킬로미터 걷는 것보다 더 힘들다. 이제까진 부족하지만 선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대형 수퍼에서는 너무 많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해야 된다. 도시에서의 단 몇 시간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났다. 햇살은 따갑고 얼굴 정면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로그로뇨를 벗어나니, 잘 정돈된 산책길이 나온다.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이 쉼 없이 나온다. 마치 무슨 공원인듯 한곳을 지나니 플란타노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길을 걷다 휴게소 비슷한 바가 나와서 맥주 두 잔을 시켜놓고 쉬어본다. 야외라서 뜨거워진 발을 식히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주무르고 있으려니 바 주인이 나와서 뭐라고 한다. 발목 아퍼 죽겠구만,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서 궁시렁거리다 다시 길을 나선다.
 

길을 조금 걷다보니 다시 오르막이다. 옆으로 오르막을 오르는 차가 부럽기만 하다.  포도나무밭을 지나니 멀리서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이 길에서 성당과 십자가 만큼은 원 없이 보는 것 같다.
오후가 되가니 햇살은 정말 뜨겁다 못해 불타는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그라헤라봉을 향해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

그라헤라봉 언덕위에 다다라서 길을 걷다 문득 옆을 보니 수 많은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가 걸려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마른 나무가지로 만든 수 많은 십자가가 철조망에 꽂혀 있다. 누군가의 소망과 소원을 기원한 듯한 이 십자가의 행렬 속에 우리도 나무가지를 주워 꽂아보고 망가진 십자가에 나뭇가지를 덧대어 보기도 한다.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한참을 늘어선 십자가의 행렬을 뒤로하고 내려오니, 뒤편으로 커다란 황소 간판이 보인다. 마치 무슨 상징 같던 황소 간판은 멀리서 보면 멋있지만, 자세히 보면 조잡하다.
길 아래 제재소에서는 엄청난 톱밥과 먼지가 날린다. 숨쉬기가 힘들만큼 날리는 먼지 때문에 김여사에게 내 손수건을 건네 주었는데, 나보고 하라며 받지 않는다. 둘이 손수건 하나 주거니 받거니 하다. 또 싸웠다(참 별 걸로 다 싸운다). 아니 내가 화를 냈다.

 

무더위는 계속되고 먼지는 날리고, 미칠 거 같다. 게다가 찻길을 따라가다 살짝 길을 잃었다. 노란색 마크마저 보이지 않는다. 멀리 보이는 저 마을 같은데, 길이 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
보데가스(와인공장, 저장소)를 지나 한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마침 그들이 타고 온 차로 태워주려는데 아저씨가 순례자는 그냥 걸어야 된다며, 스페인어로 알베르게 위치를 알려주려 애쓰신다(그냥 태워줘도 되는데....).

물어물어 찾아간 나바레떼의 알베르게. 4시가 넘어 도착한 그곳에서 엄청 지친 모습을 하고 있으니, 3층(넘 높다!) 안쪽에 샤워실이 딸린 작은 방으로 안내 해준다. 바로 조금 늦게 도착한 2명의 독일 할아버지와 4명이서 한방을 쓰게 되었다.
김여사 먼저 씻으러 들어가, 이 분들이 샤워실에 들어가지 않게 양해를 구하고 그 중 한 분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끈다. 내가 생장부터 걸어왔다고 하니, 자신은 75세라면서 자랑스럽게 크레덴시알을 꺼내 보여주신다. 우리와 다른 크레덴시알인데 이미 도장이 빼곡하다. 독일의 자기 집에서 출발해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를 걸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단다(움메~~ 기 죽어!).

주방과 가게가 없다는 정보에 로그로뇨 수퍼에서부터 음식을 지고 왔는데 알베르게에 큰 주방과 바로 앞에 미니수퍼, 빤데리아 겸 티엔다(빵가게 겸 가게)까지 열려 있다. 눈물을 머금고 요플레, 맥주만 사가지고 들어와 저녁을 해결한다. 어차피 너무 힘들어 요리를 하기도 무리다. 인스터트 음식을 전자렌지에 데워 그릇에 담으니, 대충 먹을 만하다.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발을 마사지를 하고 있자니, 김여사가 알베르게에 소독약이 없다고 밖에서 사 들고 온다. 바늘을 그냥 불로 소독하면 되는데 그걸 사온 것부터 못마땅한데다, 저 큰 소독약을 지고 다닐 생각을 하니 더 끔찍하다. 그거 들고 다닐꺼냐며 계속 빈정거리다 혼이 난다.

도시에서의 1킬로미터는 시골길의 몇 킬로미터의 피로를 만든 것 같다.. 일찍 곯아 떨어졌다.


* 아침에 걷는 길이 상쾌하다 도시 근처로 들어오니 답답하고 힘들다. 로그로뇨에선 정말 시간이 빨리 갔다. 도시를 벗어나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이미 몸은 많이 지쳐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현재형으로 또는 바램만 이야기한다. 오늘은 "몇 시면 도착하겠네", "거의 다 왔다", "오늘 컨디션이 괜찮은데"라고 누군가 말을 하면 다른 한 사람이 째려보며 말을 수정한다. 우리가 그런 말을 내뱉고 불과 30분도 안 되어서 상황이 역전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척 황량하고 먼지가 많다. 내 배낭 뒷주머니에 수건이 있지만, 꺼내기도 힘들어 그냥 간다. 뚠이 수건을 준다. 내 자켓 깃을 세워 여미면 먼지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뚠은 그 사이에도 입을 열 확률이 많기 때문에 됐다고 한다. 화를 낸다. 이러면 둘 다 못하고 간다고. 어이가 없다. 그러나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뚠처럼 했다면... 때로는 누군가의 선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이제야 깨닫는다. 
뚠이 담배를 끊어 라이터가 없다. 소독약을 빌리러 갔더니 오스피탈로가 없다. 바늘 뿐 아니라 실도 소독해야 되고 물집이 곪아터진 발들이 떠올라 쩔뚝거리며 띠엔다를 간다. 다행히 소독약이 있다. 더 작은 것이 없댄다. 망설이다 100ml짜리(0.9유로) 소독약을 사들고 왔더니 계속 잔소리다. 누구 때문에 산 건데... 어차피 의약품은 내가 들고 다니는데. 파스도 40개나 들고 왔다고 잔소리더니 대부분 뚠이 쓴다. 이곳에 와서 시작된 뚠의 잔소리가 낯설다. 뱃살이 주는 대신 잔소리가 늘어난다. 뚠은 자면서 계속 아파서 신음을 내뱉는다.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