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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2 - 나바레테에서 산토 도밍고(3월 22일, 39km, 실제 25km)


조금 편해 보자고 찾아간 알베르게가 엉망이다. 더욱이 오스피탈로(관리자)도 없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마을의 알베르게로 갔다. 그 곳의 좋은 시설보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와 함께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나이 지긋한 오스피탈로가 있었다.

나바레떼 - 벤토사 - 산안톤봉  - 나헤라 - 아소프라 -(시루에냐)- 산토도밍고

조금 서둘러 알베르게에서 출발을 준비했다. 시큰한 발목을 끌다시피 나와, 바로 옆 성당 앞 광장에서 몸을 푼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길에서 신발끈을 묶고 스트레칭을 하며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동양 남자가 길 앞을 지나간다. 혹시나 싶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한국분이다. 이 길에서 보는 인수씨를 제외한 두 번째 한국분이라 반가워 몇 마디 나누려니... 그냥 지나가신다. 이 마을에서 묵은 거 같지 않은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지나가는 게 이상하다. 여느 때처럼 기도를 하면서 출발한다. 노란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아 여러 번 길을 물으면서 간다.

마을 밖으로 길을 나서니 잘 정돈된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카미노에서 마을의 외곽에는 어김없이 묘지가 있다. 마치 성당처럼 생긴 무덤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무덤을 지나 포도밭을 따라 난 길을 한참을 걸어간다.
왠지 비가 올듯한 날씨 때문인지 오늘 아침은 더 싸늘하다. 이미 비가 내리는 날의 힘겨움을 몸으로 느껴봤기에 약간의 두려움이 든다.

포도밭을 지나자 새로 마을을 만들 예정인 듯 정비된 구역이 나온다. 아까부터 왼쪽으로 보이던 언덕 위의 마을이 벤토사겠지 하고 길을 따라 가는데,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 인근에 공사장에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니, 여기가 아니란다. 돌아가란다.
감각으로만 길을 따라 가다 잘못된 길로 온 것이다. 느낌 상 1킬로도 넘게 걸어 들어온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본 화살표가 있던 지점으로 돌아가다 또 길을 헤맨다.

길을 다시 찾아서 포도밭길을 가다. 물 한 모금과 땅콩 조각을 먹으며 잠시 쉬려니 자전거 순례자들이 씽씽거리며 코 앞으로 지나친다. 부럽다.
그렇게 걷다가 이제는 고속도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이번에는 자동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린다. 또 부럽다.
길을 잃어버려 에너지를 낭비하고, 날씨는 가랑비가 오다 말다를 하는 동안 오전부터 힘들고 지친다. 아직 오늘 여정의 첫 마을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힘을 내려고 김여사와 만화 주제곡을 부르며 걷는다. 찻소리 때문에 큰 소리로 부른다.
조금 걸으니 마을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한 곳에 여러 개 걸려있다.. 알베르게와  카페 광고 속에 화살표가 몇 개인지... 필요한 곳에 한 개씩만 제대로 걸어두지 ㅜㅜ;;

멀리 마을이 보인다. 한참을 걸었는데 이제야 오늘의 첫 마을이다. 벤토사로 들어가는 길은 중장비로 흙길을 정비 중이라 거대한 진흙길 이었다. 조심조심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마을에 가까워진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왼편 언덕으로 바가 하나 보인다. 평상시 같으면 언덕을 가기 싫어 안 갔을텐데.. 낼름 먼저 올라가 문을 열었나 확인하고는 김여사를 부른다.
따스한 커피를 마시려니 와이파이도 터지고 주인도 친절하다. 스맛폰으로 뉴스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고, 페북에 글도 적는다. 한참을 쉬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주인은 영어를 못해서 손님인 할아버지가 통역을 해준다). 
스마트폰을 통해 백자가 아는 후배가 이 길을 걷는다고 해서 인수씨 같았는데 맞단다. 다른 분도 인수씨 만났냐고 물어보던데. 이 여인은 우리와 무슨 인연인가... 산티아고에서까지 인연을 이어주는 정보통신의 힘이란...

마을을 빠져나와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의 돌하루방처럼 생긴, 산티아고 성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올레길에서도 산티아고를 만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는 화살표에 주의를 집중하며 걷는다. 언덕을 오르니 고원 속에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작은 구릉과 구릉 사이로 포도밭의 정비가 계속된다. 가끔씩 트레일러가 지나가며 먼지를 일으킨다.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은 큰 바람만 일으킬 뿐 비는 오지 않는다. 점점 푸르름 보다 황토색의 길고 지루한 길의 연속이다.

이른 봄의 포도나무는 수 많은 가지치기를 한 채 일렬로 줄서 있어 불쌍하기까지하다. 초록은 간데없고 검은 숯덩이처럼 일렬로 줄을 서있다. 포도를 수확하기 좋게 접붙혀져 있어서인지 너무 불쌍해 보여 마음이 불편하다.
근데 불쌍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이 지역의 맛있는 포도주를 매일 한 병씩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쉴 곳도 없이 길게 뻗은 길의 흙길에서 우비를 깔고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당근 어제 사놓은 다소 마른 바게트, 하몬 그리고 로그로뇨에서 사들고 와 못 먹은 작은 와인 한 병. 거기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과 지나가는 차로 인해 이는 먼지 한 사발씩...

나헤라에 도착할 무렵 롤단의 언덕에 도착했다. 롤단이라는 기사가 무슬림의 거인 페라구트를 돌로 맞혀 죽이고, 전투에서 승리한 후 샤를마뉴군의 그리스도교 기사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스페인어로 적혀있다(물론 가이드북에 적혀있는 이야기).
유적 같지 않은 유적에서 잠시 쉰 후 11세기 나바르왕국의 수도였던 나헤라를 향해 걷는다.

언덕을 내려오니 모래와 흙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적재소가 로타리에 자리 잡은 채 흙먼지를 날리고 있다. 입과 코를 막고 길을 걸어가니, 다리가 하나 나온다. 
다리 초입에 자동차가 한 대 서있고,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어슬렁거린다. 인적이 드문 길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여자 혼자 길을 걷다가 이런 경우 정말 무서울 것 같다. 그러나 순례길로 지역 경찰차도 많이 돌아다니고 대부분은 평화롭다.).
어쩌면 개나 고양이 보다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고, 이 길의 어떤 경치 보다 제일 좋은 것도 함께하는 순례자 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1킬로미터 뒤에 나헤라라고 적혀있지만, 1킬로미터 이상을 걸어도 공장만 있을 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냥 멀리서 내가 가면 마을이 뒤로 더 멀어지는 느낌이다.

슬슬 모습을 들어낸 햇빛을 머리 위로 한 채 힘들게 나헤라로 들어갔다. 초입에는 새로 지은 건물과 체육관들만 들어서있고 황량하다. 마을 초입의 중딩녀석들 한 무리가 낯선 순례자를 보더니 '칭챙총' 대면서 떠든다. 동양인(갸들은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했겠지만)들을 비하하는 듯한 멘트에 열 받아서 녀석들에게 다가가려니 김여사가 말린다.
마을 초반부터 짜증만 받은 채 가게에서 탄산음료를 사서 벤치에 앉는다. 기분 탓인지 가게 주인마저 먼지로 뒤덥힌 우리를 꺼리는 것 같아 기분이 더 꿀꿀하다.

화살표를 따라 도시를 한참 걸어가니 커다란 강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니 구시가의 모습이 보인다. 도시 초입에서 이미 마음이 상해서 11~12세기 유적으로 가득찬 나헤라에서 쉬지 않고 바로 화살표를 따라 길을 간다.

카페나 바에도 들르지 않은 채 도시에서 사진 몇 장만 달랑 찍고 계속 이동한다. 도시의 끝으로 가니 다시 오르막이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니 붉은 흙길이 가파른 경사를 지고 이어져있다. 봉우리에 올라서 내려가니 숲은 사라지고 너른 벌판만이 펼쳐져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연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는 곳이라고 한다.
경치는 이쁘고(그렇지만 자연구역이라고까진?) 좋은데, 몸은 더 힘들어지기 시작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다시 길고 지루한 벌판이다. 오늘 목표로 한 아소프라가 다음 마을이다. 가이드북과 인터넷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독방까지 제공하는 근사한 알베르게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한다.
넓고 지루한 포도밭을 계속 걷자니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흙길은 쿠션을 주지만 돌이 많아 발목에 무리를 주는 걸 생각하면, 지금은 아스팔트가 좋다. 지나가는 차들이 부럽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진다는 마음에 계속 길을 걷는다.

마을에 도착해서 만난 낯선 독일 아저씨와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크고 깨끗해 보이는 2층 건물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닫혀있다. 화살표를 따라 더 들어가 보니 공사장의 작은 간이 건물 같은 곳에 알베르게라고 적혀있다. 지친 마음에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황당하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씽크대, 세탁기와 접혀진 탁자가 덩그마니 놓여 있는데 관리가 전혀 안 되어 있는 듯 지저분하다. 거기다  관리자도 없고  2인 1실의 5개의 방 중 열려진 2개의 방은 이미 다 찼고 나머지는 굳게 닫혀있다. 먼저 방을 잡은 젊은 미국 청년을 따라 그의 방과 샤워실을 들여다보는데지 여기서 자면 밤새 벌레와 사투를 벌여야 될 것만 같다. 한동안 망연자실해 앉아있는데 이미 방을 잡은 순례자들도 그렇고 다른 순례자들도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대부분 그들은 3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 온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피곤에 지친 우리는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오스피탈로를 마냥 기다릴 수 없고, 지금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만으로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다음 마을까지 6킬로미터를 더 가야하는데 그 곳에 문을 연 알베르게(많은 알베르게가 4월에 문을 연다)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산토 도밍고 입구까지만도 약 12킬로미터를 넘게 가야하는데 여기는 산간 마을이다. 우리는 더 이상 걸어가는 게 힘들다.

김여사와 마을 큰길의 바로 가본다. 유일하게 열려진 바에 들어가 이 곳의 다른 숙소를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택시는 부를 수 있냐고 하니 가능하단다. 마음이 복잡하다. 순례인데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더 걸어야하는지, 내일 차를 타고 다시 이 곳으로 와서 걸어가야하는 건지. 결국 택시를 부르고 맥주 한 잔 시켜 둘이 나눠 마시며, 흥분을 가라 앉힌다.

12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지나간다. 택시가 몹시 낯설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왼편으로 우리가 걸었어야 하는 길이 보인다. 쭉 벗은 길로 우리가 넘었어야 될 몇 개의 높고 낮은 산(?) 같은 것들이 보인다. 거리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창 밖으로 보이는 길은 너무나 먼 거리다. 이렇게 먼 거리인가?' 복잡한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시루에냐를 스킵하고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한다. 팁을 줘야 하는지 고민하다 20유로를 건네준다.
구시가의 외곽에서 내려서 산토 도밍고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들어간다(산토 도밍고는 문맹의 거인이었고, 이 순례길을 개척하고 만든 성인이다.).
구시가 한복판에 들어가니 비아나에서 본 호주 여자를 만난다.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보니 바로 앞이란다. 시설도 훌륭하고 점잖은 오스피탈로(아마 수도사일지도)가 우리를 안내한다. 숙박료는 도네이션이라고 해서 둘이 10유로를 냈다. 1층에서 등산화를 벗고 다른 신발로 갈아신은 후 몇 개의 층을 힘들게 올라간다. 

주방과 거실을 거쳐 침실로 올라가니 거대한 다락방 같은 곳에 2층 침대가 즐비하다. 침대가 몇 개 비어있는데도 절뚝거리는 우리가 불쌍해 보였던지 벽 한 쪽에 사용하지 말라고 씌여진 푯말을 치우고 단층 침대를 한 개씩 쓰라고 한다(이것이 왠 호사!). 배낭을 풀면서 둘러보니 익숙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몇 일을 못 본 것 뿐인데 너무나 반갑다. 오스트리아 할아버지들, 스페인 친구들, 에스토니아 삼총사까지... 그들도 놀라면서 우리를 반겨 준다. 
잃어버린 가족이라도 만난냥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고 나니, 택시를 타고 12킬로미터를 넘게 스킵한 죄책감 보다는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나도 안다. 합리화란 것을...).
오늘의 피로와 짜증을 보상하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카레를 이용해 요리를 하기로 했다. 큼직한 슈퍼에서 장을 봐서 밥, 카레, 샐러드를 만들었다. 오스트리아 할아버지들이 닭요리를 하길래 농담으로 이곳에서 닭고기를 만들어 먹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웃는다(닭이야기의 전설 때문에).
비아나에서 만났던 일본 여자아이에게 같이 먹겠냐고 물어보니 좋아한다. 3명이 함께 카레라이스로 저녁식사를 한다. 우연히 2번의 카레 요리를 모두 일본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된다.
간만에 한국식 밥을 먹고 나니 힘이 난다. 오늘은 주방이 부적거린다. 어느 정도 식사들이 끝난 시간에 거실에 맨소래담 바르러 나왔다. 몇몇은 일기를 적고 있다. 이 길에서는 많은 순례자들이 하루 일기를 적는다. 짐의 무게 때문인지 얇은 공책에 빽빽하게 글을 적는다. 나는 처음 몇 일 일기를 쓰다 중단한 상태다. 대신 김여사가 일기를 쓸 때 하루를 함께 복기해 본다. 원래 계획은 저녁마다 매일 함께 그 날의 일들을 나누는 거였는데 늘 왠지 시간에 쫓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김여사를 밤잠을 설치게 했던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존경하는 스페인 할아버지와 셰마가 우리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면서 우리 발음을 듣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따~뜻하다!

산토 도밍고 성당에는 전설이 있다. '수탉과 암탉의 기적' 이라는 전설

'순례자 부부와 그들의 아들이 산티아고로 가는 여정 중에 이곳의 여관에 묵었다. 여관 주인의 아름다운 딸이 잘생긴 청년에게 눈길을 주었지만 독실한 젊은 친구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거절에 화가 난 여관집 딸은 금으로 된 술잔을 청년의 가방에 숨기고 그가 술잔을 훔쳤다고 고했다. 결백한 청년은 체포되었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부모는 아들의 운명을 잊고 계속해서 길을 갔다. 그리고 그들은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여전히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들은 산토 도밍고 덕분에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부모들은 재판관의 집으로 달려가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인 재판관을 발견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재판관은 대꾸했다. 이 부부의 아들은 지금 먹으려는 닭고기 마냥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고. 그러자 갑자기 닭들이 접시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울었다. 기적은 재판관에게 효력이 있었다. 그는 교수대로 달려가 가엾은 청년을 내려주고 완전히 사면했다.'

 

이후 이곳 뒷쪽에는 살아있는 닭 두 마리를 항상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못 봤다.


* 자주 길을 잃는다. 길을 잃는 것 역시 또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지치고 조바심이 난다.
오늘 뚠이 이 길을 걷는 것이 우리 힘이 아니라고 한다. 
주님, 성모님, 그리고 천 년 이상 이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 그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 덕분이라는 것을 이 길을 걷다보면 자연히 느끼게 된다. 

바람, 흙먼지 속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슬슬 순례자(아니 방랑자?) 느낌이 든다. 그리고 오늘은 황량하고 먼지가 가득해  황야의 카우보이 같은 느낌도 든다. 이방인... 벤토사 바르에서 창밖을 보면서 왠지 '바그다드 카페'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늘 이 길에서 외롭고 고단하다.

나헤라에서 학생들의 놀리는 소리에 더 외롭고 화가 난다. 나를 반기지 않는, 아니 거부하는 것 같은 이 마을. 벤치에 앉아 있으니 문득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 생각이 난다. 참 외롭고 무서울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니 상관없다고 말 할 수 없다. 솔직히 지하철 내 옆자리에 앉으면 살짝 엉덩이를 옆으로 옮긴다. 또 그들의 일에 방관한다. 나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똑같다. 걷는 내내 생각한다. 어느덧 화는 사라지고  미안함이 나를 채운다.

택시가 너무 낯설고 왠지 실패했다는 생각도 든다. 창 밖으로 보이는 12킬로미터가 믿을 수 없었다. 문득 내 다리를 쳐다본다. 오늘 저 두 배 이상을 걸었는데... 
이제까지 내 의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정말 아니다.
아무도 신의 허락과 도움 없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나 자신과 뚠에게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