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비 보다는 햇빛을 걱정해야 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간사한 순례자여!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먹는다. 변함 없이 빵에 잼을 발라 커피와 먹는다. 그래도 오늘은 따뜻한 커피와 차에 오스피탈로가 직접 썰어주는 신선한 빵도 맛있다. 이 정도면 행복한 아침(아, 계란 후라이여~!, 과일과 채소는 따로 챙겨 먹어야 한다.)이다. 오스트리아 뚱땡이 할아버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깔끔쟁이 독일 할아버지(내 옆)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몇 분은 영어가 안 되신다. 이미 먼 길을 걸으신 분들답게 서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날씨를 보여주며 이야기하자 카미노에서는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스마트폰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이들은 이 한 체구로 하루하루를 걸어왔다. 3명이 5리터의 물을 사서 나눠 들고 다니는데 포스가 느껴진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무심코를 뒤를 돌아봤다가 놀랐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우르르 밀려온다.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크레덴시알 스탬프를 어디서 받느냐고 물어온다. 무니시팔(공립)알베르게가 문을 닫아 나도 프라이빗에 머물러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걷다보니.. 우르르 뒤에서 걸어온다. 우리 느낌은 달려오는 것 같다.
조그만 가방과 가벼운 장에 가리비를 하나씩 메고 있다. 뒤따라 오는 한무리의 순례자 그룹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마 주말을 이용해 순례코스를 조금씩 조금씩 걷는 스페인 사람인 듯하다. 우리를 보고 계속 인사하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일일이 답해주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넓게 퍼져 우리를 에워싸고 웅성되며 걷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산솔을 향해 가는 내내 그들의 번잡함을 피하려 잠시 벤치에 앉아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쉬어본다. 무리진 행렬은 찔끔찔끔 계속해서 사람을 보낸다.
이른 아침부터 태양이 작렬한다. 김여사가 선크림을 발라야 한다고 하는데.. 구름 한 점 없어서, 그냥 아무 소리 안 하고 얼굴을 내민다(내 손으로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고 김여사가 툴툴. 싫다거나 빨리 바르라고 하지 않는 것만도 어딘데).
아, 비가 그치니 햇살이구나...
그들을 보내고 조용히 걷다 보니 언덕 위의 작은 마을 산솔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렇게 가까이 보여도 아직 한참을 걸어야 한다. 이젠 안 속는다.
마을 초입에 있는 카페 화장실에 들렀다 올라가보니, 아까 그 분들이 연신 사진을 찍으며 바글댄다.
교회의 모습은 에우나테의 그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산 소일로 성당의 외관만을 보고 바로 붙어 있는 토레스로 넘어간다.
아침부터 너무 정신이 없다. 뭔가 어수선하기만 하다. 나도 무엇인가를 경계하는 모습이 생긴 듯하다.
잠시 토레스의 놀이터에 앉아 물을 보충하고 쉰다. 8킬로미터 밖에 아직 못 걸었는데....
토레스를 벗어나니 너른 평원을 계속해서 오르고 내린다. 햇살은 따스해지고 얼굴이 익은 몇몇 순례자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서로 인사를 한다(위의 사진은 수건 말린다고 가방에 걸고 걸어가는 모습).
산길에는 큰 관목보다는 넝쿨같은 나무만 즐비하고, 길 옆으로는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고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이 굉음을 내고 달린다. 앞서 지나갔던 관광버스 순례단은 이제 길게 줄을 늘이고 걸어간다.
찻길 옆 벤취에 앉자마자 바람 때문에 추워서 바로 옷을 꺼내 입고 오늘도 바게뜨, 하몬, 치즈, 오렌지와 비타민 탄 물로 점심을 먹는다.. 경치 좋은 곳에 앉아 빵을 먹지만 찻길이라 가끔씩이지만 50센티 정도 앞에 차가 지나고 바람이 거칠게 분다. 딱딱한 빵도 조금씩 질리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도 순례자 행렬은 계속된다. 지금부터는 너른 평야를 계속해서 걷는다.
나무 밑 처마에 피아(왼쪽), 쥴리(오른쪽)가 점심을 먹고 있다. 피아는 아직 쩔뚝이고 있고, 쥴리는 쌩쌩하다. 쥴리가 피아에게 스포츠 샌달을 빌려줘서 피아가 오늘은 다리가 덜 아프다며 함께 웃는다. 로그로뇨에 가서 샌달을 살 꺼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두 독일 아가씨들 중 한 명은 결국 병이 나서 산티아고까지 가지 못했다.
어제 함께 묶었던 다른 이들은 오늘 로그로뇨까지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비아나까지만 가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비아나까지의 길은 지루한 평지다. 거기다 중간에 물을 보충할 길이 없어서. 물통에 물도 모두 말라 버렸다. 나올듯 나올듯 나오지 않는 마을을 계속해서 걸어간다. 오늘의 뜨거운 태양에 목이 타들어간다.
멀리 비아나 마을이 보이는데 언덕 위의 마을은 가까이 다가가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다.
힘들게 마을 초입에 도착해 문이 열린 바로 들어간다. 맥주를 시키고 화장실에서 물을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맥주도 맛있고 물도 맛있다.
일단 알베르게를 찾아야 함으로 마을을 올라간다.무슨 마을이 맨날 언덕 위에 있는지,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니 큰 성당과 광장에 사람들이 즐비하다. 일요일이라 뭔가를 한 건지, 관광객 같은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날 길 입구에 있는 2인실에 묶고 싶었지만, 김여사의 알베르게를 찾으라는 특명에 찾아 나선다. 화살표를 따라가는데 지자체 호스텔은 보이지 않고 다시 내리막이다. 뭔가 이상해 가방을 내려 놓고 혼자 알베르게를 찾으러 돌아다녀 본다. 테라스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아도.. 막 뭐라고 혼자 스페인어만 해대신다.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뛰어다니며 물어보니 다시 올라가란다. 또 욕 나온다.
다시 되돌아가 방금 내려온 게이트 옆에 지자체 알베르게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웬 공익근무 청년스러운 사람이 도장을 찍어준다.
커다란 주방이 있지만 일요일이라 가게들도 다 문을 닫았다. 오늘은 그냥 저녁을 사 먹기로 한다. 물론 순례자 메뉴하는 레스토랑 찾아서 예약을 해야한다. 다리는 아프고 건물 안은 춥고 메뉴는 7시 넘어야 가능하다고. 여기선 7시도 빠른 거다. 배고프고 피곤하고 일찍 자야 되는 순례자들에게는 힘들다.
아래층 주방 옆 식당 같은 곳에서 발목에 맨소래담을 바르고 있자니 벽에 붙어있던 신문스크랩(순례자의 준비물이 적혀있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불필요한 물건도 눈에 들어온다.
김여사와 나는 내일 로그로뇨 우체국에서 몇 가지 불필요한 물건을 산티아고의 한인민박으로 발송하기로 한다.
알베르게에 있자니, 동양여자아이 하나가 레깅스 위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돌아 다닌다. 보통 카미노에서 동양 여자아이는 곧 한국사람이 대부분이다. 국적을 물어보니 일본사람이란다. 맞다. 한국사람은 알베르게에서 미니 스커트 안 입는구나! ㅋㅋ
씻고 나서 알베르게 인근에 무선와이파이를 찾는다. 스카이프로 산티아고 한인민박에 전화를 해 소포를 부친다고 이야기를 하고, 알베르게 옆에 있는 테라스로 가서 잠깐 일몰을 구경한다. 멀리 로그로뇨가 보인다. 추워서 금방 발길을 돌린다.
오늘 이마을이 Navarra 주의 마지막 마을이다. 내일은 와인의 산지 La Rioja(라리오하)로 들어간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먹으러 들어가니, 아까 일본 여자아이와 2명의 젊은 순례자(호주 여자, 독일 남자)가 들어온다. 이들은 하루에 40킬로미터씩 걷는다고 한다(에고, 난 그냥 나에 맞게 걸을 거다!). 건장하고 두 사람들은 그렇다고해도 저 작은 체구의 일본 친구는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일단 젊은 게 좋은가 보다.
오늘은 민속주 오르호도 한 잔 시켜본다. 노란색이다. 독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알베르게 옆 전망대 쪽으로 가서 하늘을 보니 별이 정말 많다. 예쁘다.
소독약(알베르게에 비치되어 있다) 빌려 물집 소독하고 실 꿰어놓고 우리 윗 침대 자리잡은 스페인 자전거 순례자들과 잠시 이야기한 뒤 자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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