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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7 - 부르고스에서 오르니요스까지(3월 27일, 21㎞)

  
메세타로 들어온 길, 사람의 흔적도 적은 이 길에서 엄청난 비를 만났다. 멀리 보이는 마을까지의 거리는 생각의 거리와 실제 거리로 구분된다. 마을 처마가 보이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항상 멀다. 도시와 시골의 거리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편리와 불편의 차이였다. 하지만 불편은 결국 이기심이었다.

부르고스 - 말라토스 다리 - 푸에르타 로메로스 - 비얄비아 - 타르하도스 -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일광절약으로 갑자기 1시간에 당겨졌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인수씨와 인사를 하고 길을 걷는다. 옛 건물을 개조한 화려한 호텔을 지나  보도블럭길을 따라 마크를 찾아 길을 걷지만 화살표나 조가비 마크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닫힌 가게 사이로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강가 인근 찻길에 들어서니 길을 잃은 것 같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간신히 말라토스 다리를 건넌 후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길을 걷는다.  멀리서 순례자가 한 두 명 눈에 들어온다.

카미노 마크가 선명한 병원과 대학을 지나니, 이제 부르고스 시내의 끝자락에 다가선다. 버스 정거장의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하자니 한 순례자가 알베르게에 무엇을 두고 왔다며 버스를 타고 되돌아간다. 그 버스를 타고 나도 따라가서 하루 더 쉬고 쉽다. 

찻길을 건너 외곽의 마을을 지나 숲길로 접어든다. 아, 이제 다시 순례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참을 걷는다. 다리는 아프지만 하루의 휴식이 있어서인지 아직까진 제법 괜찮다. 비얄비야를 지나 다리 난간에서 잠시 쉰 후 타르하도스 마을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 빵과 따스한 커피 한 잔... 이것으로도 잠시나마 행복해진다. 구름이 가득한 날씨에도 스산한 기운을 가려준다. 비는 올 듯 말 듯 자꾸 찌푸린다. 여기저기 웅덩이와 진흙이 조금씩 사람을 괴롭힌다.

타르하도스를 지나서 나가려니 에스토니아 삼총사가 다시 보인다. 잠시 쉴 곳을 찾는 것 같아 보인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길을 걷는다. 풍광이 달라지면서 커다란 언덕이 이제 메세타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마을을 지나 언덕에 오르니, 넓게 트인 들판이 울긋불긋 솟아있다.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한다. 우비를 입을까하다 가방에 레인커버만을 서로 씌워주고 고어텍스 쟈켓을 믿고 걸어본다. 
출발 전 정보에 의하면, 메세타 지역에서 여성순례자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나름 경계를 하면서 지난다. 사방 몇 킬로 내외에 사람의 인척이 없는 길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걸어오면 '알로!' 하고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경계심을 버리지 않았다(하지만 이건 다 기우였다.).

프레아토레 샘터에서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길 건너편에서 안쪽으로 한참 들어간 곳에 작은 의자만 있을 뿐이라 그냥 지나쳤다.  휴식 없이 길을 제법 걸어서 조금씩 다리도 아파왔다. 작은 언덕을 넘어도 또 평원이고 작은 언덕을 넘어도 또 평원뿐인 길이었다. 비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한다.

우비를 꺼내자는 김여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가 보이니 빨리 걷자고 했다. 사실 이 때 우비를 입었어야 했다. 빗방울은 더욱 세차지고 멀리 보이는 목적지는 멀기만 하다. 거칠어진 빗방울에 바지는 다 젖어 들어가고 심한 한기까지 느껴졌다. 이제는 가방을 내리고 우비를 꺼낼 수 조차 없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빨리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마 카미노 길을 걷는 중 가장 빠르게 걸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저 곳이 저리 멀리 있다는 걸 우리 알았어야 했다. '노새 죽이는 언덕'이라 이름지어진 곳에 이르자 멀리 오늘의 목적지 오르니요스가 눈에 보인다. 언덕을 내려가려는데 더욱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 완전 홀딱 젖은 채로 마을에 다다르자 야속한 빗방울은 잦아 들었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마을에 들어서자 아직 2시(시에스타)가 되지 않아서 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보고 4시 이후 문 열면 오자며 일단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알베르게를 찾아간다. 성 당옆 작은 건물이 알베르게이다. 우리식 반지하 건물에 들어서니 사람들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스딸로가 어디있냐니고 물었더니 일단 자리를 잡으란다. 대부분 스페인 사람들이고 처음 본 사람들이라 대화가 안된다.
비에 젖은 김여사는 짜증을 낸다. 비도 완전히 젖 데다 낯선 사람과 반지하 건물에 눅눅한(사실 지금까지의 알베르게에 비해 시설이 많이 안 좋았다) 곳이라 다른 곳을 찾아보잖다. 당연히 다른 곳을 가려며 메세타에서 한참을 더 가야한다. 다른 곳은 없으니 이곳에 묵어야 한다며 일단 옷을 갈아입자고 했다.

일단 젖은 옷을 빨과 신발을 빨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후 나와보니 숙소 옆 성당은 무덤을 끼고 있다. 바로 앞 바에 가서 따스한 차를 마시며 있자니 몇몇 순례자가 들어온다. 어떤 이는 다음 마을로 가,고 어떤 이는 이곳에서 머물기로 한 것 같다. 저녁식사를 예약하고 신문지를 몇 장 여주인에게서 얻어왔다. 일단 마른 신문을 등산화에 꽂고 한참을 쉬었다.

몇 사람이 더 들어왔다. 이 작은 알베르게는 이제 조금씩 붐빈다. 어느새 가득차 버렸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람은 갓 20의 캐나다 청년 줄루 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고 있는데 그 바의 여주인이 알베르게로 오더니 장부를 펴고 숙박비를 받는다. 완전 홍반장이다. 크레덴시알 도장을 찍더니 화로에 불을 붙인다. 완전 선수다.
잠시 뒤에 다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순례자용 메뉴는 단촐하지만 정갈하다. 따스한 스프도 시키고 와인과 함께 맛난 음식을 먹는다. 따뜻한 음식을 먹은 것만으로도 온 몸에 긴장이 풀린다. 다시 돌아온 알베르게엔 어느덧 온기가 느껴진다. 저녁을 먹으러 화롯가로 한 두명씩 모여든다. 온기가 퍼지니 김여사의 얼굴도 화색이 돈다. 빨래 건조대를 펴자 사람들이 젖은 옷을 들고온다. 서로가 양보하면서 하나라도 더 말릴 수 잇도록 머리를 맞댄다.  

이 마을의 이름인 오르니요스가 화로, 화덕을 뜻한다니, 이곳에서 화덕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사실 언어의 문제로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유쾌한 도니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시종일관 웃음을 터트린다. 나와 김여사 그리고 캐나다 청년만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웃기다. 다들 숨이 넘어간다.

새로 만나 어색한 사람들이지만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쉽게 친해지고, 김여사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지는 듯하다.
사실 작고 습한 이 알베르게는 소박한 스페인 순례자들, 화덕, 그리고 홍반장 아줌마로 따스한 기운이 돌던 알베르게이다.
주방 씽크대 위에 올려진 소박한 예수상이 이곳과 참 잘 어울린다.

* 찌뿌둥한 하루지만 오늘은 샤워로 몸을 풀고 인수씨와 아쉬운 이별을 한 뒤 길을 나선다.
  손이 시리다. 다시 느껴지는 가방의 묵직함. 오늘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습관이란...
  출발 30분 만에 부르고스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에스토니아 3총사를 만나 뒤를 따라간다. 또 헤어진다.
  뚠은 어깨가 아프다고 한다. 계속 진흙이다. 어제 휴식한 사람 같지 않게 몸이 무겁다.

  드디어 메세타로 진입했다. 확실히 풍광이 달라진다. 긴장이 된다. 조금씩 비가 내린다.
  이미 젖은 상태라 비옷을 꺼내지 못하는데 갑자기 빗발이 장마비처럼 세차다. 사방을 둘러봐도 비를 피할 곳이 전혀 없다.
  먼저 자켓이 물을 먹는다. 난 추위에 약하다. 비 맞는 건 정말 싫다. 그래서 300일은 내 가방 안에 우산이 있다.
  세찬 비바람에 눈을 뜰 수도 없고, 이미 젖은 바지 위로 떨어지는 빗물에 다리가 따갑다. 매를 맞는 것 같다.. 이러다 허벅지에 구멍이 날 것 같다. 너무 춥다. 거기다 지치고 배는 고프고 화장실까지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이다. 비에 맞아 쓰러질 것 같은데 이렇게 쓰러지면 못 일어날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이 길에서...
  이젠 무릎 보호대 안까지 빗물이 스며들어 발목 보호대 안의 양말까지 적시고 발에 댄 생리대가 물을 머금고 뿜어내며 신발 안에 빗물이 고인다. 방수 장갑은 이미 물을 잔뜩 머금었고 손은 얼었다. 최악의 상황이다.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해서 이미 짐이 습기가 가득한 상태에서 신발까지 젖는다면 당장 내일 어떻게 걸어야할지 막막하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으면서 미친 듯이 걷는다. 거의 1시간 만에 7.8㎞를 걸었으니 이건 뛴 거다. 위기 상황에서 인긴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마지막 '노새 죽이는 내리막'이라는 악명 높은 곳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내려와서는 다시 1㎞를 더 걸어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도대체 알바르게는 어디 있는 거야?"라고 허공에 연신 내지른 소리가 뚠에게는 원망으로 들린 것 같다.
  겨우 찾아 들어간 알베르게는 벽이 바위 같은 돌로 된 지하에 있다. 그 습함과 스산함이란... 게다가 온통 낯선 사람들이 이미 빨래를 주렁주렁 널어놓았고 거기서 물이 떨어진다. 우리는 세면장과 연결된 유리로 된 출입문 쪽 침대로 갔다. 보기만 해도 썰렁한데 덥혀 있는 담요가 너무 더럽다. 바닥은 이미 진흙과 물로 흥건하다. 그 위에 가방과 옷을 내려 놓는데 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으이그!

  화장실도 주방도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급하게 땀만 겨우 닦고 덜 젖은 옷들을 찾아 껴입었다. 젖은 옷가지들을 침대에 널고 진흙이 튄 신발을 손질한 후 바에 차를 마시러 간다. 여간해서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저녁 시간이 애매해 예약을 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침낭에 들어가 머리 위까지 지퍼를 올렸지만 온 몸이 덜떨 떨린다. 벽의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마치 한겨울 벽으로 스며드는 냉기와 같다. 아프면 안 되는데...   
  그 와중에도 잠이 들었다. 뚠이 깨워 일어났는데 다행히 아까보다 몸이 괜찮다. 홍반장 아주머니가 화로에 불을 켜 준 후에도 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참 궁리를 하다 컵에 물을 받아 유일한 조리도구인 전자렌지에 한참을 돌려서야 겨우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한동안 그 흔한 포트를 구경할 수 없었다. 이해가 안 된다.  

  처음 들어왔을 때 화덕 아래 신발들을 말리고 있던 것을 봐서 등산화를 그 밑에 놓자 뚠이 뭐라한다. 둘 다 신경이 날카롭다. 저녁이 되자 모두들 화덕 밑에 신발을 말린다. 뚠은 내가 하는 건 모두 못마땅한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도 추위가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7명(도니, 산 디아고, 로르샤, 엔드라케, 줄르와 우리)이 화덕 앞에 둘러안아서야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사람의 온기란.... 가족 같기도 하고 난파선에 남겨진 생존자들 같기도 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가 안 되고 줄르와 우리는 스페인어가 안 됐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된다.
  주방에 혼자 남아 하나의 빨래대에 널린 모두의 빨래가 잘 마르도록 계속 뒤집고 위치를 바꾸었다. 꼭 오징어 굽는 것 같다. 그러다 욕심을 부려 화덕에 올려 놓은 속옷이 타버렸다. 그나마 내 것이라  다행이다.

  아까 짜증낸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쾌적함 속에 길을 걷자고 온 것이 아닌데 금방 짜증내고 쉽게 지치고 깨끗하고 따뜻하고 쾌적한 것만 찾고 있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이 날이 여행 중 가장 따뜻한 기억 중에 하나로 남아있다니...
  돌아보면 삶의 많은 순간들이 이러했던 것 같다. 힘들었던 순간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되고, 슬프고 아팠던 순간이 성장의 시간이 되고...
  빨래를 말리며 화덕 옆에서 순간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는 어리석은 나를 돌이켜 본다.
  하지만 내일 또 투덜거릴 것 같다...  낮에 신께 드린 기도의 1/100만의 마음이라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 이렇게 부족한 나라서 이 길을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