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8 - 오르니요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까지(3월 28일, 23㎞)

 

카스트로헤리스의 알베르게에서 어떤 한국 사람이 두고 간 쥐눈이콩 봉지를 보았다. 아마 콩밥 해먹을 요량이었을텐데 이곳에 뜯지 않은 봉지 채 두고 간 것을 보면 참 우직한 사람의 인내가 여기서 결국 끝났나보다. 버려야 할 충분한 무게를 이곳에서 버린 그는 끝까지 잘 갔겠지...  방명록 속에서 낯익은 사람의 글도 보인다. 한국의 한 가수의 글이다.. 나는 이미 그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의 칭얼거림이나 의타적인 모습들이 별로였지만.. 이제는 그 글에 공감이 간다.

오르니요스 - 산볼 - 온타나스 - 산 안톤 - 카스트로예리츠

조금은 여유있게 길을 나섰다. 이제는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은 한다. 저녁에 자면서 아픈 다리 때문에 계속 뒤척이다 신음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틱을 쥔 손과 몸 구석 구석이 뻐근하지만 이젠 그 뻐근함도 제법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나서고 거의 제일 마지막이 되어서야 길을 나선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으로 길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냥 길일 뿐인데... 몇 걸음만 걸으면 신발굽 만큼의 진흙이 밑창에 달라 붙는다. 지친 다리에 그 무게는 정말 버겁다. 일부러 길가의 풀을 밟고 지나가야만 한다. 가는 길 중간 중간 연신 꼬챙이로 신발 밑의 진흙을 떨구어 낸다.
길을 가다 산볼의 알베르게가 왼편에 보인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있는 알베르게이다. 집시들이 사는 곳 같지만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이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하루를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가이드북에는 적혀 있다. 어제 오르니요스에 묵지 않았으면 한참을 걸어 이 곳에 묵어야 했을 것이다. 오다 쓰러졌을 것 같다.^^ 
계속 걷는다. 드넓은 푸른 초원 너머 마을도 집도 보이지 않는다.

3월 하순의 푸른 초원 해발 1,000미터 내외의 고원지대에서는 밀로 추정되는 씨앗의 새싹이 끝도 없이 긴 평원에 가득하다. 그 밀밭 사이로 돌이 잔뜩 깔려있다. 시야의 끝은 또 따른 평원 뿐이다. 걷다보니 햇빛이 들어오고 땅이 마르기 시작한다.
몇 시간을 걷는 내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뒤를 돌아봐도 따라오는 순례자가 없다. 왠지 적막한 이곳을 그저 하염없이 걷는다. 온타나스에 도착해야 간단한 요기라도 할텐데... 슬슬 배가 고파온다. 쉴 장소가 필요하다...

평원의 끝자락에 움푹 파인 곳에 위치한 온타나스. 그래서 평원을 걷는 길 내내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것 같다. 언덕을 내려가 마을에 들어가니 작은 바들이 몇 개 눈에 들어온다. 순례객 외에는 방문자도 없을 것 같은 마을이다. 눈에 들어오는 첫번째 바에 들어가보니 도니와 스페인 부부가 있다. 우리에게 힘내라며 먼저 출발한다. 한참 후 순례자 한 명이 들어온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또띠야와 커피를 주문한다. 핀란드 여성인데 이번이 두 번째란다. 강인하게 생겼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바에서 파는 초코렛 과자도 사서 가방에 넣는다. 오늘의 목적지의 절반 정도는 왔구나 안심하며, 마을회관 같은 곳의 수돗가에서 물통을 채운다.

온타나스에서부터는 분지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차도가 보이는 산등성이의의 한쪽 편 길을 따라 걷는다. 앞에는 아까 바에서 보았던 순례자가 우릴 앞서 걷는 모습이 앞에 보인다.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는데 안심이 된다. 아침녘의 차가운 기운이 오후가 되면서 따스한 온기로 바뀌고 있다.  
간간이 좌측으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목적지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진 차량이 부럽다. 쉬엄쉬엄 걷다보니 산 미겔의 유적이 보인다. 유적이라고 하지만 그냥 무너진 건물더미 같은 모습이다. 
저 멀리 멋진 건물 몇 채가 보인다. 산 안톤의 모습이다. 사실 산 안톤이 마을일거라 생각했지만... 왠지 마을의 모습은 아니다. 

11세기 프랑스의 안토니네 기사단의 고대 수도원 유적이 그대로 간직된 곳이 산안톤이다. 길 사이로 난 아치 모양이 인상적인데, 가이드북에는 순례자를 위한 빵을 남기네 메세지를 남기네 써있지만 그런 것은 찾을 길이 없었다. 유적의 입구도 닫혀져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웅장하고 장엄한 모양은 그대로 남아있다.

산 안톤의 아치를 넘어서니 멀리 카스트로헤리스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가 보이지만 실제는 5㎞가 넘는 차도를 따라 가야한다. 이제 어느 정도 거리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고 쉽게 마음을 놓지 않는다. 잠시 후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를  몇 명 만난다. 그들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다시 거꾸로 가는 중이란다. 정말 대단하다. 로마와 서고트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답게 마을 뒤 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레콩키스타(유럽의 기독교의 이슬람 정복기간) 기간에 무어인과의 격전지로 역사적인 요새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잇지만, 지금은 중세풍의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으로 보일 뿐이다.

마을 초입에는 만사노 대성당의 모습이 보이지만 예배를 드리는 곳 같지는 않다. 담벼락의 화살표만이 반가울 뿐이다. 성당을 끼고 마을의 언덕으로 올라가니 바와 알베르게를 겸하는 곳이 보인다. 몇몇 순례자가 알베르게 앞 뜰 잔디밭에 배낭을 내려 놓고 쉬고 있다. '부엔 카미노'를 외치고 언덕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더 들어가 본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까미노 마크를 따라가다 사설 알베르게가 하나 보였지만 웬지 우중충해서 김여사와 무니시팔(공립)로 가기로하고 마을 끝자락의 알베르게까지 가본다.
마을 중앙 광장 오른편 2층 건물에 알베르게가 깔끔하게 자리잡고 있다. 오스피딸로(관리자)에게 접수를 하고 침대에 자리를 잡는다(이 알베르게는 마치 학교 강당 같은 곳에 2층 침대가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부엌은 없지만 포트, 전자렌지, 식기들이 있고 간단한 과자와 커피 등의 음료로 아침을 제공한다. 이미 어제 함께 한 순례자들은 먼저 도착해서 간단하게 정비를 하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도 짐을 푼다.

수염 가득한 알베르게 관리자는 자원봉사 형태로 일을 하시는 분인데 정말 친절했다. 우리는 책에서 본 타우에 대해 물었다. 산티아고의 길 전역에서 타우를 구입할 수 있는데,14세기 설립된 산타클라라 수녀원에서는 수녀님들이 직접 만든 타우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타우는 T자 모양의 십자가로 순례의 십자가로 언급되며, 중세의 피부병을 치료하는 능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줄루가 'awesome'이라고 추천한 언덕 위의 요새를 포기하고,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친구에게 줄 선물도 살 겸 펭귄 걸음으로 수녀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파란 비옷과 분홍 비옷에 펭귄 걸음이라 뒤에서 보면 정말 웃길 것 같다. 마을에서제법  벗어나 있는 수녀원에 도착해 조심스레 열려진 문으로 들어가 본다.
수녀원에는 타우 외에 과자, 케잌 등을 팔고 있는데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봉쇄수녀원 분위기가 난다. 벨을 누르고 기다리면 수녀님이 벽사이로 난 돌림형 선반 사이로 말씀을 하신다. 보통 필요한 물건을 이야기하고 돈을 올려 놓으면 벽 뒤의 수녀님이 물건을 주시는 건데...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폐쇄 구조이다. 근데 문제는 수녀님은 영어를 못하신다는 거다.
여러 개의 타우와 케잌을 사려는 우리에게 자꾸 잔돈을 거슬러 주시고 수량을 맞추지 못하신다. 애꿎은 돌림판만 수차례 돌아간다. 답답한 마음에 필서로 써서 돌림판을 돌려도 안된다.. 아 답답하다.. 물론 수녀님도 답답하다. 결국 얼마나 답답하셨는지 문이 열리고 나이 지긋한 수녀님이 나오신다. 우리는 손가락으로 필요한 물건을 가르키고 숫자를 표시하고 나서야  'si, si' 가 연발되며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알베르게로 들어와서 빈둥빈둥 거리며 와이파이를 찾아 담벼락에 붙어다니다 방명록이 보이기에 펼쳐 보았다. 참 많은 한국사람이 지나갔구나...

다들 나처럼 아프고 힘들게 왔구나 생각하며 하나 둘 읽어본다. 쪼금 짠한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가 느껴졌다. 가수 박기영이 쓴 글로 추정되는 글도 발견 ㅋㅋ.
저녁은  마을 광장 옆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소리에 후딱 달려내려가 냉동 피자와 파스타를 사서 전자렌지로 데워서 먹는다. 조리도구가 없어 이것이 최선이다.


사실 어제 처음 보았지만 그 사이 많이 친해진 사람들. 왼쪽부터 김여사, 스페인의 코미디언 도니 아줌마와, 스페인 젊은부부 로르샤와 엔드라케, 19살 캐나다 청년 줄루. 그런데 이 젊은 부부와 아주머니는 이번 카미노는 여기까지만 걷는다고 하신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 한 컷을 찍었다(위 사진의 털복숭이 아저씨는 알베르게 오스피딸로).

이날은 몇 가지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 
우선. 수녀님이 뛰쳐나온 일(너무 웃었다)
둘째. 오랜기간 함께 걸었던 에스토니아 삼총사의 귀향(그들도 여기까지만 걷는다고 한다.)
세째. 소박한 저녁 미사(신부님과 5명이 참석한 미사)

저녁 식사를 하고 오스피딸로가 미사가 있다고 알려줘서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을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맨 뒤 들어갔다. 신부님과 마을 주민 한 분, 4명의 순례자. 그 중 3명의 순례자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캐나다인과 한국인. 그러나 각자의 마음의 언어로 정말 소박한 미사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이날 미사는 참 좋았다)


미사를 마치고 문 닫기 전의 가게에서 싸구려 와인2병을 사들고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에스토니아 삼총사의 휴가 일정이 모두 끝나 그들과 마지막 한잔을 하기로 한 것이다. 참 인연이 깊은 친구들이다. 멀고도 먼 길을 함께 했다. 한 명이 곧 아기 아빠가 된다고 해서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기념품 하나를 건네주었다. 좋은 기억을 함께 해준 고마움에 와인을 나누며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외로운 여행이 될 듯하다.


* 평야의 고원,  진흙 때문에 중간에 다소 힘들지만 1시 40분쯤 지자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어제의 5인방 중 4명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 알베르게는 강당 같은 마루바닥에 제법 크고 깔끔한 침대가 놓여져 있고 벽면에 온통 순례자 사진들이 걸려있다.
  어제에 비하면 5성급 호텔이다. 아침 식사(도네이션) 포함 6유로에 정말 호사를 누린다.  
  처음으로 조리는 안 되지만 포트가 있고 식기도 있다. 심지어 헤어드라이가 있다. 그 낯설음이란....ㅋㅋ
  빨래를 널고나니 비가 오기 시작해서 로르샤와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
  알베르게의 관리인은 수염이 길고 나름 분위기가 좋다.  이제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개가 무섭지도 않다. 

  오늘은 걸으면서 진흙에 대한 명상을 했다 ^^ 
  길에서 만나는 그 모든 것을 통해 생각하고 조금씩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알베르게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갑자기 순례자 무리들이 들이닥친다. 다시 경계심이 생긴다.
  활기를 넘어 소란스럽다. 바로 옆에 뚱뚱한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누워있다.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그 웃음에 금새   민망함이 사라진다. 이젠 제법 익숙하다. 그저 코만 골지 않아 주신다면... 아니다. 이 분이 코를 골아 주셔야 뚠이 코를 골아도 덜 미안하다. 차라리 그래야 잠을 더 잘 잔다. 
 
  에스토니아 3총사와의 마지막 밤이다. 뚠이 그들과 늦은 밤(여기선 9시 30분이면 야밤이다.)까지 이별주를 마신다.
  그들이 우리에게 준 알베르게 정보가 든 몇 장의 종이가 내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너무 고맙다...  길을 걸으면서 삼총사 때문에 정말 행복했다.... 좋은 길동무이자 천사였던 그들...  
  뱃 속의 아이가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고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