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집을 꾸린다. 로비에 내려가니 작은 창고에 짐을 넣고 1시 경 다시 오픈할 때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정들었던 셰마와 몇몇 친구들은 오늘 길을 떠난다고 하고 몇몇 사람들은 오늘 하루 더 묶는다고 한다.
아침 8시에 밖에 나온 김여사와 나는 일단 알베르게 뒤편의 카스티요(성)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스페인의 영웅 엘시드의 고향인 부르고스는 명칭 자체가 거대한 방어탑이라고 불리우듯 성채는 대성당 윗편 산 위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든든한 성채의 외곽에서는 부르고스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피곤한 우리는 더 자고 싶었지만, 차가운 바람과 부슬거리는 빗속에 쫓겨나듯 나온 우리는 따스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도통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시내를 조망하며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성 뒤편 숲길을 걸었다. 가방도 없이 등산화 대신 간단한 아쿠아 슈즈를 신고 산에 있자니 발목이 시큰거리고 비가 스며들어 시려웠다. 마을 어귀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 갔다.
어제 못 찾은 '버거킹'을 물어보았으나 청소년들도 잘 알아듣지 못하다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는 버거키이 아니고 '부르고 킹'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그러나 여기서 멀다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
결국 힘들게 찾은 바에서 간단하게 아침끼니를 때웠지만 오래 머무르기가 불편해서 밖으로 나왔다.
피곤하고 추운데 갈 곳도 없으니 너무 처량하다. 차라리 힘들어도 걸을 걸하는 후회와 먼저 떠난 사람들 생각이 간절하다.
성당 앞 광장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지만 여전히 거리는 한산하고 문을 연 가게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 와이파이가 되는 곳 찾기는 너무 힘들다. 김여사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부르고스 거리에는 위트가 넘치는 작은 동상들이 위안이 된다. 하나 같이 유쾌하다.
결국 광장과 강변 어귀의 빵집을 겸하는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스마트폰으로 메일과 뉴스를 체크하고 엽서도 몇 장 적어본다. 엽서를 써주겠다고하고서는 그나마도 힘들어서 밀린 숙제가 많다.김여사와 나는 오랫만에 스카이프로 안부 전화를 한다.
시간은 잘 가지도 않고.. 차 몇 잔과 빵을 시켜 같은 자리에 주구장창 앉아 있어본다.
얼릉 1시가 되기를 기다려 본다. 한 나절이 이렇게 길다니...
12시가 되어가자 새로운 순례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낯설고 괜시리 몸이 사려진다. 다들 젊고 씩씩한 것 같다.
서로 반가운 마음이 같았는데.. 일단 알베르게가 문을 열어 등록을 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의 공유점, 목적지가 같다는 공유점, 한국에서 서로 알고 있던 사람의 공유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참을 떠들었다.
일단 나는 알베르게에서 낮잠을 자고 각자 관광하실분들은 관광을 하고 울 김여사와 다시 대성당을 찾아 갔다.
저녁녘이 되어 인수씨 김여사와 함께 다시 마트에 들러 내일 길에서 먹을 음식과 몇가지 재료들을 사고 들어왔다.
함께 미사에 참석한 후 어제 들렀던 케밥집에서 케밥을 사고 와인 몇병을 사서 알베르게 로비로 향한다.
와인 각 1병을 놓고 수다를 떤다. 나름 외로웠던 김여사도 한참을 울고 웃으며 실컸 떠든다. 보름의 시간이라는게 만만하지 않았을 시간인데 우리의 휴식을 빙자한 하루에 좋은 손님을 맞은 것이다.
아주 오랫만에 맞이하는 휴식과 오랫만에 맞이한 동향 사람... 참 재미난 술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부터 그 힘들다는 메세타 평원을 가야한다. 인수씨는 우리의 안내로 여기 하루를 더 묶기로 했다.
많은 이들이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의 평원길을 포기하고 기차나 버스로 스킵한다. 일단 길이 지루한 평원이고 볼거리 보다는 광활한 초원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인수씨 말고 한 아저씨와 대학생 아들 커플도 만났다. 나름 인사를 나누었지만, 내 인상이 안좋아서인지 별로 관심을 두고 계시지 않으셨다. 그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레온으로 다음날 떠났다.
* 휴식하는 날인데 피곤하고 춥고 배 고프다.
걸을 때는 발에서 열이 나는데 오늘은 빗물이 스며들어 발이 시리고 한기가 느껴진다. 걷는 게 그립다니...
한국에서 아침 나절은 정말 빨리 지나가는데 오늘의 한 나절은 하루 같다.
낯선 사람들 속에 인수씨를 발견했다. 오랫만의 유창한(^^) 한국말, 물론 뚠과도 한국말을 했지만 신앙과 관련된 얘기는 일부러 자제했었다. 그동안 경험한 생각과 감정들을 인수씨와 함께 풀 수 있었다. 서로 울며 웃으며... 결국 와인을 더 사러 마켓까지 갔다왔다. 뚠은 차마 못 말리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또 다른 한국인들. 아버지와 아들인데 우리를 보자 경계부터 한다. 목소리를 낮추라는 말부터 먼저 한다. 여기서는 다 떠들고 있는데... 이곳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우리나라 사람은 40, 50대의 아저씨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한국 사람들을 반가워하지도 않고 경계고 피해다녔다. 다름대로의 사연이 있겠지만 섭섭하다 못해 화가 난다.
우리도 나름대로 남한테 피해 주는 거 싫어하고 조용히 다니는 편인데 왜 저럴까?
다른 나라 사람들은(내가 본 한에서) 활기차고 적극적이고 정말 반가워들하는데...
이 먼 곳에서 만나서는 마치 자기들은 우리와는 격이 다른 사람들인냥... 내가 보기엔 별로 격이 달라보이지도 않는데...
나중에 그 분들에 대해 외국 친구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들도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안타까웠다.
그래도 피아, 쥴리에 이어 스페인 할아버지까지 반가운 얼굴들이 계속 들어온다. 마치 우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너무 반갑다. 떠나보낸 사람이 있으면, 뒤에서 또다시 만나지는 사람들이 있다.
술이 취했다고 미사를 안 보는 것은 핑계라는 인수씨에 말에 처음으로 취중 미사를 드렸다.
어제보단 발 상태가 좋아진 것 같은데 몸은 더 피곤하다. 뚠과 달리 나는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한 번도 못 누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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