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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9 - 카스트로헤리스에서 프로미스타까지 (3월 29일, 27km)

오늘 걷는 길은 2천년 전에도 있었던 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2천년 전에도 있었을 그 하늘은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이었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내리막에서 보이던 그  깊이의 감동은 대단했다. 깊고 푸른 파랑 속에 초록의 길에 있었던 우리 두 사람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카스트로헤리스 - 모스텔라레스 봉 - 피오호 샘터 - 이테로 데라 베가 -
티에라 데 캄포스 - 보아디야 델 카미노 - 카스티야 운하 - 프로미스타


알베르게에서 간단한 빵과 커피를 마시고(음~! 이 행복이여!) 조금 늦게 출발을 했다. 오늘 길을 마무리하는 친구들과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며, 조금은 외로운 길이 되겠구나 하는 허한 마음이 든다. 알베르게에서부터 보이던 높은 언덕이 오늘 올라가야 할 고단한 길의 시작이다. 수직으로 높게 솟은 성벽을 올라가는 길의 느낌이다. 멀리서 보니 벌서 몇 명은 산 중턱을 올라가고 있다. 100여 미터 이상의 수직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이다.

꾸역꾸역 모스텔라레스 고개를 올라간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다 뒤돌아 보면 카스트로헤리스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오전의 오르막은 생각보다 여유가 있다. 언덕의 정점에 다다르자 순례자용 쉼터가 보인다. 말도 묶어 둘 수 있는 쉼터인데, 오르막을 오르며 땀의 열기로 젖은 내피를 벗어 가방에 넣는다.
정상에 오르니 안개가 깊은 평원이다. 언덕 바로 밑과는 또 다른 식생이 펼쳐진다.

살짝 안개가 낀 평원을 30여분 걷다 보니 갑자기 내리막이 나타난다. 내리막 앞에 다다르자 언덕 밑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평원이 한 눈에 쫘~악 펼쳐진다.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넓게 뻗은 시야로 부르고스주와 팔렌시아주를 아우르는 넓은 평원. 아마 가이드북 같은 곳에 자주 보아왔던 그곳인 듯하다. 잠시 멍하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본다.
그러고는 곧러다 우리는 둘 다 카메라를 한손에 쥐어든다.

순례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만은 인증샷이다. 갑자기 개인 날씨와 이런 풍광 결코 돈주고 살 수 없는 것 한국사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돌아가며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찰칵찰칵..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지금 우리들의 스맛폰 바탕화면이 되어있는 걸 보면 사진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산티아고 길의 가장 절정이 아닌가 싶다.
경치에 취해서 페이스를 못찾고 힘차게 걸어간다... 아 저 멀리 있는 목적지는 생각도 안한다.. 그런데 지금 저 넓은 시야 속에 우리의 목적지는 아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잠시 망각하고 걷는다.

이렇게 이쁜 길은 꺼꾸로 이야기 하면 고단하고 힘든 길이다. 이길을 걷다가 자주 보는 것 중에 하나가 순례중에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작은 기념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돌하나 얻어 놓고 길을 가는 것뿐...

 

1시간여 길에 풍경에 취해 걷다 보니 피오호 샘터가 나온다. 할아버지 세분이 가판을 열고 순례자를 맞아 주신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경계심에 뻘쭘에 하다. 옆벤치에 앉아 바나나와 커피한잔을 받아 들고 도네이션통에 2유로를 넣고 잠시 쉬어 본다. 잃게 쉴 곳이 마땅하지 않은 곳에 어른신들이 가판을 열고 자신의 재량에 맞게 기부를 받고 음식을 팔기도 하는데, 알베르게 정보 전단지를 주시는 분도 있다. 하루에 10여명도 안되는 순례객을 위해 노년을 이곳에서 소일 삼아 보내시는 것 같다.

조금 걷다 보니 피수에르가강이 나타난다. 이제 부르고스주를 벗어나는가 보다. 팔렌시아로 접어드니 감회가 새롭다. 걸어서 주와 주의 경계를 넘다 보면 내가 얼만큼 왔는지 목적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다.

논과 밭의 땅 팔렌시아의 경계석에서 여정을 점검했다. 레온에 몇일 정도까지 들어갈까 잠시 체크해보고.. 생리현상도 해결하고 길을 나선다. 순례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하루이다. 이 긴 길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둘 뿐이다. 

주 경계를 지나 큰 밭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오늘의 첫 마을이 나온다. 이테로데라베가. 마을은 한적한 전원 마을이다.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니 알베르게와 띠엔다(상점)를 겸하는 바가 나온다. 오늘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맥주와 커피 그리고 보까디오를 하나 시킨다. 
이제는 스페인어로 주문하는 방법은 조금씩 익숙해진다. 점심을 먹고 간단한 초코렛과자를 사들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걸어야 한다. 이제 절반 정도를 걸어온 셈이다. 
 

한적한 마을을 벗어나자 일직선으로 뻣은 시골길이 이어진다. 오후가 되면서 햇빛은 뜨거워지고 구름사이로 시퍼런 하늘이 우리를 방긴다. 멀리 두개의 언덕으로 이어진 티에라 데 캄포스를 보고 계속 해서 걷는다. 아직 파종을 하지 않는 밭의 황토빛과 파란 하늘색의 조화.. 단조롭지만 모든게 아름다운 길이다.

쌍둥이 처럼 봉긋하게 나와 있는 봉우리를 바라보고 걷는 길. 둘이서 자기 맘데로 산에 이름을 붙인다.쌍봉산
평탄한 길이지만 작은 자갈들이 자꾸 신발 안으로 들어온다. 스패치를 하기는 조금 거추장 스럽지만, 긴여정에서 발밑에 구르는 자갈만큼 성가신 것은 없다.

봉우리를 넘으니 윈도우즈 바탕화면에 나올 듯한 풍경이 이어진다. 더욱이 구름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모습들에 살짝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정말 아름답다는 말들이 계속 나온다. 중간 중간 둘 다 사진을 남겨본다. 이렇게 경치에 취해 조금은 오버페이스로 휴식없이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 보면 오전에 가장 속도가 빠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각자의 체력의 한계에 따라 몇길로를 걸으면 자신에게 신호를 보내게 된다. 나에게는 20킬로가 가까워지면 신호가 온다. 우리는 그분이 오신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냥 경치에 들떠서 그분이 오시는 줄 모르고 계속 걸었다.
사실 발목의 염좌가 심해져서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부르고스에서 하루 휴식후 생리대를 몇개 덯데고 그냥 걷고 있는 상태였다.
이날을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한다. 눈(머리)은 호강을 하고 다리(몸)는 힘든 하루였다고....

 

2시가 조금 넘어서 멀리 보아디야델카미노라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서 부터 알베르게들이 보이지만 문을 연곳은 많지 않다. 

마을에 들어가 바를 찾아보니 바가 없었다. 여행객 같아 보이는 분에게 물어보니 알베르게를 알려주신다. 마을 성당 옆에 작은 집으로 들어가 보니 벗나무로 둘러쌓인 정원에 이쁜 알베르게가 있다. 음식을 파냐고 물어보니 주인 아주머니는 판다고 이야기 하신다. 일단 산미구엘맥주와 간단한 음식을 시키고 정원에 앉는다. 
손수 이것저것 이쁘게 꾸며 놓았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어 여기 묶을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7킬로 정도를 더가 프로미스타에 묶기로 하고 푸른 하늘속의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해 본다.
알베르게의 주인은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본다. 마을 전체가 순례자들에 의지해 생활을 하는 곳이니 어제 몇명의 순례객이 이전 알베르게에 묶었는지.. 몇몇정도를 보았는지.. 보통 4월 이후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가 많은데.. 대부분 현재 순례자의 수에 따라 유동적으로 오픈하려고 하는 것 같다.

 

알베르게 엔엘까미노라는 이 알베르게에 예술작품과 같은 이런 조각이 정원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곳인데.. 다음에 이길을 걷는다면 꼭 묶고 싶은 곳이었다.


마을 벗어나 이제는 운하길을 찾아 길을 나선다. 봄의 한복판은 아침은 춥고 오후에는 더운 전형적인 날이다. 비가 안온것만으로 행운인데..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길들을 봤으니 뿌듯한 마음에 길을 걷는다.


까스띠야 운하를 따라 걷는 길은 무척 단조롭다. 그리고 지루하다. 한두명의 자전거 순례자를 본것외에는 오늘 하루종일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함께 걷던 일행의 대부분이 앞서가거나 돌아갔기에 조금은 둘뿐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갈대가 길게 뻣은 길을 따라 우리 둘은 하염없이 걷는다.. 이제 지치고 힘들다. 

운하에 끝에 다다르면 도시로 바로 들어간다. 도시 보다 작지만 마을보다는 제법 큰 곳이다. 11세기 성마르틴 성당과 15세기 산페드로성당이 나란히 있어 관광객들이 전세버스로 들르는 곳 중에 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도시에 첫 인상은 제법 을씨년 스럽다. 마을의 광장까지 가는 길에 한참을 두리번 거려야 했고, 마을 광장에서 조금은 어렵게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갔다.
 지자체(무니시팔)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다 달랑 우리둘이다. 취사시설도 없고 휴게공간도 없다. 장점은 둘이 한방을 쓴다는 것 뿐이다. 1층의 거실도 주인이 혼자 쓰는 것 같고..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그래서 다들 다른 사설알베르게로 갔나보다...
도착하자마자 햇빛을 본 김여사는 침낭을 말리고 빨래를 한다. 마을 광장으로 나가니 관광객이 조금 보인다. 인근에서 와이파이 찾기를 하다 숙소로 들어와 보니 젊은 처녀와 한 노인이 간편한 차림으로 들어온다..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설마 산티아고길에도 불륜이 ㅎㅎ(부녀지간이 함께 걷는 길이다.. 나증에 이 부녀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몇일 밥을 못먹었기에 오늘 밥을 해먹으려 했는데 주방을 못쓰는 알베르게라 빠에야를 사먹으려 마을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가 본다. 대부분 문을 닫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스페인의 저녁은 많은 늦은 시간에 한다) 숙소 옆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와인한병과 고정메뉴와 같은 순례자용 메뉴.... 맛이없었다.. 프로미스타 은근 정이 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