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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1 - 카리온에서 칼사디야까지 (3월 31일, 19km)

힘든 사람을 배려하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잘 걷던 친구가 있다. 그도 역시 프랑스길 초입부터 걸었을 것 같은데..아마 20여일을 걸어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누군가 힘들면 도움을 주고 영어를 못하는 어른들의 통역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봐왔던 우리에게는 참 착한 독일 처녀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완주하지 못하고 오늘의 일정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 너무나 아쉽고 섭섭했다.
 

 카리온 - 산소일로 - 칼사다로마나 - 칼사디야 데라케사


일어나서 어제 남긴 밥으로 아침을 끓여 먹었다.한국인은 역시 밥심이다. 밥을 긇여 먹고 남는 밥은 플라스틱용기에 담아 가방에 넣는다. 어제 여유있게 장을 보아서 간단한 간식거리까지 가방이 제법 든든하다. 우리의 집구성은 먹는것은 내가방에 넣고 의약품과 세면용기와 돈은 김여사가 담당을 하기에 나의 가방은 더욱 불어났다.

약간 늦은 시간에 출발하려고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 광장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을 풀고 있자니 초반부터 함께 길을 걸었던 쥴리(독일인)가 보인다. 너무 반가워서 허그를 하고 잠깐의 수다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마을을 나서려니 무슨 장이 서려고 한다. 장을 구경하고 싶지만 일단 출발을 해야 한다. 조금 길을 헤멘다가 마을의 구도록 쪽에 보이는 순례자를 따라 길을 나선다. 짙은 안개로 시야가 어두웠는데 여기저기서 순례자들이 한두명씩 나타난다. 생각보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많은 순례자들이 이 마을에 묵었던 것 같다.

마을 외곽의 카리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니 안개가 더욱 두터워진다. 순례자들이 한두명씩 무리를 지어 걸어간다. 오늘길은 20킬로 정도를 걷는 동안 마을도 가게도 안나온다고 가이드북에 적혀있다.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지금까지 잘 걸어왔다는 뿌듯한 마음에 길을 걸어간다.

다리를 건너자 산소일로가 나타난다. 웅장한 과거의 수도원의 모습이지만 지금은 고급호텔로 변한 곳이다. 몇몇순례자가 들어가기에 따라서 들어가 보았다. 지금은 공사중이었는데. 호텔 중앙의 예수상이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산소일로를 지나자 숲길로 접어든다. 시야는 무척 흐려서 멀리 사람의 모습이 간신히 보인다. 지적이는 새소리와 가로수 그리고 안개에 쌓인 숲길은 상당히 몽환적이다. 앞이나 뒤 멀리 간혹 사람의 형상만이 보인다.

일자로 뻗은 길로 계속 걷자니..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로 가는 지 알수 없는 그런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걷는 이 길은 로마시대부터 이어진 길이다. 우리말로 로망가도라고 불리는 길이 아직 그데로 보존되어 14킬로 동안 이어진다. 실제 이 길의 하부는 수로보다 높은 석조를 기단으로 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며, 과거의 습지 인근인 이곳에는 석조가 부족해서 멀리서 가져왔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길을 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한참을 걷고 있자니 쥴리가 자꾸 뒤쳐진다. 우리가 쉬면 앞으로 가고 또 그가 쉬면 우리가 앞서 나가는 것이었다. '부엔카미노'라는 인사 외에 그저 단순한 안부만 묻고 길을 걸었는데. 자꾸 혼자 걸으며 뒤쳐지니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오늘 어디까지 갈꺼냐고 묻기에 목적지는 테라디요스지만 일단 가다 힘들면 쉴거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이렇게 길게 뻗은 길에 인가도 없으면 발생하는 문제 중 제법 심각한 것은 생리현상의 해결이다. 남자야 별 문제가 없지만 여자의 경우 멀리서도 지금 그가 무엇을 하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잘생긴 독일 청년 두명은 김여사가 생리현상을 해결하려 하면 무조건 짜잔하고 무려 3차례나 기습공격을 한다. 더욱이 안개로 녀석들과의 거리감이 없던 상태에서 당한 기습이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순례자용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그녀석들이 떠나면 좀 해결해 보려 했는데.. 그녀석들이 갑자기 나타나 자리를 깔고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래서 같이 누워버렸다. 카미노의 소변감시단을 만난 김여사는 하루종일 난감했다. 위 사진에 드러누워 있는 친구들이 카미노 소변감시단이다.

어느새 안개는 걷히고 다시 구름사이로 햇빛이 내리찐다. 숲길도 다시 들판길로 변해 버리고 끝도 없이 이어진 가도를 걷는다. 마을이라도 나와서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이렇게 일자로 늘어선 길에도 어김없이 카미노 마크는 나타나고 우리는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1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언덕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일단은 마을의 바를 찾으니 바가 없다. 초입의 알베르게로 돌아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으며, 김여사와 상의를 했다. 7킬로정도를 더 걸어 다음 마을로 갈것인지 오늘은 그냥 일찍 여기서 쉴것인지.. 이미 우리는 20킬로를 걸었기에 그냥 쉬기로 했다.

카미노레알이라는 이 알베르게는 편의시설은 그다지 별로 이지만, 벽화가 많이 맘에 든다. 알베르게에 커다란 수영장이 있지만 지금이야 물이 있어도 춥다. 하지만 우리는 수영장이 있는 뒷뜰에서 잠시 오후의 뜨거운 햇살에 장비들을 말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조금 있자니 쥴리와 몇몇 독일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렇게 일찍 도착한 날은 빨리 씻고, 정비할꺼 정비하고 낮잠을 한숨 때릴 수 있다. 대부분 침대는 선착순으로 먼저 온 사람이 찜이다. 찜하는 방법은 침낭을 펼치면 영역표시가 된다. 대부분이 2층 침대이기에 노인분들이 오면 1층을 양보해야 한다.

한참을 쉬다 저녁 시간이 되어 인근 식당에서 메뉴를 먹는다. 보통 첫번째 접시, 두번째 접시, 디져트, 빵 그리고 와인이나 물로 구성된다. 대부분 순례자에게는 1인당 10유로 안쪽의 가격을 받는다. 맨위의 그림은 첫번째 접시에 해당하는 마늘스푸와 햄샐러드 보통 두번째 접시는 육류(치킨, 하몽, 스트이크, 생선류)가 나온다. 와인은 대부분 병채로 나온다. 남은 물은 가져가도 된다.
다행이 이 식당은 와이파이가 되서 인수씨에게 몇가지 숙박정보를 트위터로 보내주고, 어제의 사진 몇장을 페이스북에 올려본다. 그리고 일기예보의 체크도 꼼꼼히 해본다.

밥을 먹고 숙소에 가보니 쥴리가 아직도 자고 있다. 숙소도 어느새 붐벼서 15-6명의 사람이 묶게 되었다. 신기한건 이날 우리둘을 빼고 모두 독일사람들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근간을 지켰던 독일 사람들이 지금은 카미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밤에 쥴리가 오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김여사에게 여자화장실에 따라 가보라고 했다. 안색이 많이 안좋아 보였다. 다행이 몇몇 독일 사람들도 그녀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일단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김여사에게 빠지라고 했다. 괜찮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쥴리는 이야기 한다. 그러나 못내 아쉽게 쥴리의 여행은 위장병이 심하게 생겨 이날 이후로 더이상 이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