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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0 -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까지 (3월 30일, 21km)

일자로 길게 뻗은 길은 거리를 좁힐 수 있고 목적지까지 가기에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쉽게 피곤하게 만들고 지루하게 만든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가장 짜증났던 건 왠지 왔던 길로 되돌아 가는 듯한 그런 느낌. 그러나 돌아보고 살펴보면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단지 목적지와 소요시간만을 생각했던건 갔다는 반성을 해본다.

알베르게에서 제법 비싼 아침을 먹는다. 1층에 주방에서 딱딱한 빵과 간단한 차 한잔을 마신다. 독일인 부녀와 이탈리아 아저씨 이렇게 다섯명이 먹는 아침... 독일인 부녀를 영어를 할 줄 알고 거기다 딸내미는 현재 이태리에서 살아서 이태리 아저씨의 이야기를 통역해 준다. 이태리 아저씨는 하루에 40킬로씩 걷는다고 한다. 허걱 우리는 하루에 20킬로 걸으면 넉다운 된다고 말하며 함께 웃는다.

 

간단한 식사 후 각자 여정을 걷는다. 마을을 벗어나서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앞쪽에 독일인 부녀가 보인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우리가 앞지른다.. 언제나 우리는 아침에는 쌩쌩하다.

 오늘 걷는 길의 대부분은 두갈래 길로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차도 옆 순례자용 자갈길을 하루종일 걷는 길이고 하나는 우회해서 숲길을 걷는 길이다. 아무래도 일직선으로 뻣은 찻길보다는 숲길이 나을 듯해서 숲길쪽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차도 옆 자갈길을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중간 중간 진출입로 마다 보호석이 카미노 마크를 달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갈림길이 나오는 첫번째 마을 포블라시온에 도착해서 걷고 있자니, 아침을 함께한 이태리 아저씨가 사뿐사뿐 걸어가며 오신다.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다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의 가벼운 걸음 만큼 가방 또한 단촐하다. 아 어떻게 하루에 40킬로씩 걷는지 알 수 있을 거 같다.

숲길 방향으로 길을 걸어갔다. 말이 숲길이지 그냥 비포장 일반도로 였다. 여기저기 또랑이 있고 진흙도 있는 걷는 것이 여간 골치 아프지 않다. 두번째 마을인 버진델리오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트랙터를 몰고 가시는 분들이 보인다. 혹시 여기 바가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한분이 스탬프를 찍어주신다면 오라고 하신다. 트랙터에서 도장을 찍어주시더니 사탕 몇개를 가져고 가란다.
기분 좋게 사탕을 받고는 마을 옆의 작은 공원에서 어제 사둔 과일을 씻어서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는다. 걷다가 좌측으로 보이는 원래 직선길이 더 좋아 보인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며 농지를 가로질러(생각보다 밭은 푹푹 빠졌다) 주 도로 쪽으로 이동을 했다.

차도 옆으로 난 순례자 전용길로 이제는 걸어본다. 가끔씩 씽씽 달리는 도로 옆으로 간혹 멀리서 순례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쉽게 따라 잡기도 힘든 거리에 있다. 그냥 둘이 투벅투벅 별 말없이 길을 걷는다. 언덕을 넘으면 또 일자로 뻗은 길이고 또 넘어도 일자로 뻗은 길이다..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비얄카사르가 멀리 보이기 시작을 한다. 멀리 초입에 성당이 보이기 시작을 한다. 출발전에 제대로 가이드북을 읽지 않고 와서 무슨 성당인지 별로 관심없이 지나가려 했다. 마을 끝자락의 바에 가서 가이드북을 챙겨보니 이 성당은 꼭 들러보길 강추하고 있다. 13세기 템플기사단이 순백의 산타마리아성당으로 국립기념물이라고 한다. 마을 끝자락의 바에서 간단히 음료를 마시다 가방을 맡기고 다시 성당으로 걸어가 본다.



마을 광장에 산티아고성인이 성당을 바라보고 앉아있다. 일단 우리는 인증샷 한번 날려주고 성당 쪽으로 향햇다.

성당은 수리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성당 내부에 장식물은 굉장히 예술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순백의 마리아 상을 비롯해 외관의 멋진 장식 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고 입장료를 받는 것 같았다.

 비얄카사르를 지나 다시 또 똑같은 길을 걷는다. 약 5킬로를 걸어야 오늘의 목적지인 카리온에 도착할 수 있다. 산티아고까지 463킬로가 남았다는 표식을 보니 웬지 뿌듯하다. 뭐 아직 온만큼 가야한다는 이야기지만..
둘이서 이야기를 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밥을 해먹어야 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오늘은 햇빛이 너무 뜨겁다. 얼굴은 타지만 나는 썬크림을 바르는게 너무 귀찮다..

 

 3시가 다돼갈 무렵 카리온의 초입에 도착을 했다. 입구에서 부터 교회와 수도원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마을의 중앙으로 가서 알베르게를 찾기로 했다.
난 은근 힘들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첫번째 바에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김여사는 일단 알베르게부터 찾지 왜 바부터 가냐고 은근 투덜대신다.. 내리찌는 햇빛에 둘다 조금씩 힘이 들었나보다. 난 일단 에스토니아 친구들이 준 가이드북의 알베르게 정보를 체크해야 한다고 변명을 하며, 알베르게를 찾는 시늉을 한다.

 

 

관광안내소를 지나 산타마리아 성당 옆의 산타마리아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수녀님이 접수를 받고 계신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줄루가 보인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몇몇 낳선 순례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제법 밀린 세탁물을 세탁하기로 햇다. 수녀님께 세탁실을 물어보니 세탁비용과 건조비용을 맡기라고 하신다.(나중에 깔끔하게 세탁물을 개서 주신다. 가격은 일반 세탁비와 같다.)  세탁물을 맡기고 잠시 광장에 나갔다가 카미노 초반에 자주 보았던 피아를 만났다. 반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쥴리도 지금 이 마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1층의 주방이용이 가능함으로 가게를 물어보니 알려주신다. 그러나 시에스타에 걸려 5시가 넘어야 찾아갈 수 있다. 혼자 걷는 스무살 젊은이 줄루에게 함께 밥을 먹겠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해서 일단 그의 몫까지 함께 하기로 한다.
조금 쉬다가 제법 떨어진 가게를 찾아가 보니 나름 대형마트이다. 이것저것 장을 봐서 야채를 볶고 밥을 하고 있자니.. 줄루 이놈이 젊은 영국여자애와 독일여자애와 함께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엥 우리랑 밥먹는다고 해서 양을 많이 해놨는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 젊은애들끼리 먹는게 좋겠지 하며, 그쪽에서 밥을 먹으라니 그런다고 하며 미안하다는 말없이 쌔~앵 한다. 여기서 조금 삐졌다. 우리는 밥을 꾸역꾸역 먹고.. 물론 와인도, 남은 밥은 용기에 넣고 내일 먹을 꺼리로 남겨두었다.
이날 저녘 수녀원에서 하는 기도회에 참석했다. 오랜시간 수녀원을 지켜오신 것 같은 나이 지긋한 수녀님 부터 젊은 수녀님까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함께하는 소중한 기억이었다. 카톨릭신자가 아니라도 참석 할 수 있는데 보기드문 경건한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