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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2 - 칼시디야에서 사아군까지 (4월 1일, 23km)

부르고스에서 부터 레온에 이르는 길은 적막하고 고요하다. 하루종일 순례자와 그들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외에 보기 힘든 경우 조차 있다. 쇄락한 과거의 마을, 역사의 흔적과 기록으로 존재하는 마을들 천년전에는 순례자의 안전을 지키며 성장한 마을들이 지금은 순례자에 의해 마을의 명맥이 유지되기도 한다.

칼사디야 데라카사 - 레디고스 - 테라디요스 - 산니콜라스 - 사아군

일어나서 쥴리에게 괜찮냐고 간단히 물어보고 길을 나선다. 형식적인 대화였다는게 못내 아쉽다. 알베르게를 나와 어제 저녘을 먹었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직 순례자를 위해 아침을 팔고 있다. 여관을 겸하는 곳이지만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메뉴를 팔고 있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서 아침을 먹고 있다.

아침을 먹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길을 걷는다. 독일 아주머니 두명이 앞서 걷는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걷기로 한다. 앞선사람이 있으면 길을 걷기가 편하다. 그들을 따라 보폭을 맞추어 걷다 보니 걷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마치 경주를 하듯 길을 걷는다. 찻길을 끼고 옆에 난 순례자용 길로 걷는 길이지만 어느 순간 더이상 그들의 보폭을 맞추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어느새 1시간여 만에 레디고스 마을에 다다른다. 화살표 방향을 보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을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 같다. 앞선 무리들의 사람들을 보고 조금 차도 방향으로 지름길을 잡는다. 오늘은 생각보다 긴거리를 걸어야 함으로 마을의 교회를 돌아보는 길은 포기를 한다.

오늘은 구름 한점 없다. 그 만큼 시야도 넓다. 넓은 시야에 맞춰 앞뒤로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바라보면 들판길을 걷다 보니 멀리 테라디요스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테라디요스 마을도 한적한 작은 시골마을이다. 마을 한복판에 작은 쉼터가 있기에 물을 보충하고 잠시 쉬어간다.
과거에는 탬플기사단의 근거지 였다지만 지금은 아무 유적도 남아있지 않다. 조금은 깔끔해 보이는 알베르게가 눈에 들어왔다. 몇몇 순례자는 그 알베르게에 들렀다가 나오는 모양인지 쉬고 있는 우리를 지나가면 '부엔 카미노'를 외치고 길을 걷는다.

작은 자갈길을 따라 걷다보니 모라티노스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옆으로는 와인을 저장하는 토굴이 이색적이다. 마을 외곽에는 새로 몇몇 건물을 짓고 있는데 아마도 알베르게의 모습 같기도 하다.

11시 30분이 지날 무렵 산니콜라스에 다다른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팔렌시아의 마지막 마을이기도 한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어느덧 햇살이 뜨거워 외투를 벗은채 많은 땀을 떨구었다. 알베르게와 바를 겸하는 곳에 들어가 보까디요와 맥주를 시켜 먹는다. 독일맥주가 있기에 그걸 주문해서 먹어본다.

120번 국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가니 팔렌시아주와 레온주의 경계석이 나타난다. 우측의 멀리서는 고속도로를 타고 차들이 쉴새 없이 달려간다. 언덕을 넘어가니 멀리 사아군이 보인다. 아침에 다른 순례자를 따라 빨리 걸어서인지 생각보다 사아군에 일찍 도착할 거 같다.

사아군으로 진입하는 우회로로 가보니 '다리위의 성모교회'가 공사를 하고 있다. 무데하르(이슬람인 무어인) 양식의 교회라고 한다.

사아군으로 가는 길에서 누군가의 등산화가 나무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사아군에서 새신발 하나를 샀겠구나. 사우군은 제법 큰 도시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회권력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많은 유적과 수도원 그리고 다양한 순례관련 건물들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사아군의 초입에서 부터 알베르게까지의 거리도 생각보다 멀다. 도시의 규모가 어느정도 있어서 화살표를 정신 바짝 차리고 찾아가야 한다.

 

 1시 40분경에 지자체 알베르게인 클루니를 찾아간다. 과거에는 트리니다드 성당이였던 건물을 지금은 개조를 해서 1층은 마을회관과 관광안내소의 역할을 하고 있고 2층은 순례자용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일단 자리를 잡고 있으면 저녁에 관리자가 온다고 한다. 큰 건물에 달랑 우리만 남기고 시에스타라고 다들 자리를 비운다. 2시가 되기전에 우리도 밥을 해먹기로 하고 인근 마트에 장을 보러간다. 쌀과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장을 보고 아무도 없는 큰 알베르게에서 밥을 해먹는다.

아무도 없는 빈 알베르게에 있자니 관광객 무리들도 오고가고 어떤 순례자는 방이 어떤가 구경하러 오기도 한다. 졸지에 오스피탈로가 된 기분이다. 간단한 읽을거리와 빨래를 들고 알베르게 앞 공터에 가서 뒤집어 쓴채 빨래를 말린다.

우리가 묵은 이 지자체 알베르게의 외벽에는 수백마리의 비둘기가 틈새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당연히 벽면에 조금만 잘못 앉아 있으면 새똥을 맞기에도 좋다.

이날 저녁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한명 두명씩 순례객이 들어오고 뒤는게 요금을 내고 스탬프를 받고 있자니 1층 강당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일 마을 공연에 맞춰 동네 주민들이 합창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2층의 알베르게와 1층의 강당 사이는 확트인채로 그들의 노래소리는 큰 건물에 웅장하게 메아리친다. 초반에는 연습하는 노래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이들은 공연연습은 10시 지나도 그치지 않는다. 보통 순례자들은 9시가 되면 하나둘 잠들어 버린다. 한두명씩 나와서 투덜대기 시작한다. 10시 30분이 되자 이제는 순례자 모두 깨어나 노래에 항의 하듯 소리를 지른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11시가 되도 결코 공연연습은 끝나지 않는다. 아래층을 몇번을 내려갔다오며 눈치를 줘도 계속된다. 결국 11시 30분이 되어 내가 내려가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정말 열받은 상태였다. 결국 11시 45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의 저녁은 원래 굉장히 느리다. 저녘을 8-9시에 먹고 밤늦게까지 술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네들 입장에서야 마을 회관에서 연습을 늦게까지 할 수도 있지만 오픈되어 있는 2층 공간의 침실속에 피로에 찌든 순례자는 전혀 안중에 없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낳다. 시설보다 배려 때문에 가장 안좋은 기억의 알베르게와 도시는 사아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