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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7 - 우테르가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3월 17일, 12km)


비오는 날, 신발과 스패츠의 진흙을 닦고, 우비, 장갑, 모자, 배낭과 젖은 옷가지들을  말리는 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해야한다. 특히 신발이 눅눅하면 당장 발에 문제가 생기고, 그 건 앞으로 아니 당장 내일 길을 걷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 오는 날이면 그래서 더 분주하다.
닦아서 말리고 있는 신발을 보면 얘들이 짠하고 고맙고 미안하고 대견하다. 새로 사서 신고 왔는데 벌써 낡아버린 듯한 신발에게 이런 말들을 건네본다. 그리고 내일도 잘 견뎌달라고... 신발에 내 감정을 이입하는 것 같다 - 김여사

우테르가 - 무르사발 - 에우나테 - 오바노스 - 푸엔테 라 레이나


 

오늘도 아침부터 비다. 짧은 거리만을 걷고 쉬기로 했음으로 오늘은 기상도 그만큼 느렸다. 느릿느릿 짐을 싸고 나와 가방을 매려할 때, 아래층 카페도 문을 열었다. 기분 좋게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신다. 따뜻한 우유도 더 준다(보통 스페인의 바에서의 카페 콘 레체 - 카페라떼 가격은 1유로 내외이다, 약 1천5백원 정도)
카페에서 가이드북을 보여주고 두 갈래길 중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물어보니 에우나테 길로 가란다. 뭐 2.8킬로가 추가되는 길이지만, 10킬로 내외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주저 없이 방향을 잡고 출발한다.

신기한 건 그렇게 절뚝거리는 발이 발목보호대와 등산화를 조이기만 하면,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부터 왼쪽 복숭아뼈가 너무 아프다.

우테르가에서 8시가 다 되어 출발해 조금 걷다 보니, 언덕 위의 길을 걸어 금새 무르사발에 도착했다. 무르사발에서 갈림길을 찾아야 되어 조금 조심스럽게 이동을 한다. 깔끔하고 정갈한 마을이다. 마을에는 바도 열려있지만, 커피를 마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놀이터 옆에 에우나테 방향의 마크가 보인다. 놀이터에서 물을 보충하고 길을 따라 걸어간다.

생각보다 에우나테는 가깝지는 않았다. 아직도 비는 내리고 길은 질퍽하지만 어제보다는 길은 잘 정리되어 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다.
지도 상의 km는 정말 가늠하기 힘들다. 운동장 몇 바퀴라고 생각하면 금새이지만 막상 걷다보면 그 길이의 가늠은 정말 들쑥날쑥이다.

작은 국도를 건너자 이상한 모양의 성당이 보인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데, 그건 미술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패스하고...팔각형 모양의 성당과 외벽의 포치도 이상하지만, 탬플기사단의 또 다른 성당과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져.. 외관은 작지만 웅장한 모습이다. 실제 커다란 대성당보다 이 작은 교회는 주위의 경관과 어울어져 더 멋진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이 성당의 옆에는 이 성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작은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친절한 관리인 아주머니는 성당 안을 볼 수 있다며.. 남편이 안에서 청소를 하니 문을 열어달라고 하라고 하신다.

성당의 외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너무나 정갈한 성당 내부에 제대 뒤로 동양적인 얼굴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팔각형의 성당안에서 김여사와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김여사는 기도를 했다).

교회 만큼 소박한 관리인 부부는 참 따스한 모습으로 순례자를 대해 주었다. 그저 몇 마디의 대화에서 그들이 지키는 작은 성당의 소박함이 가장 커다란 기쁨으로 느껴졌다. 웬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했다.

에우나테의 감동을 뒤로 하고 길을 걷는다. 비는 내리지만 이제 슬슬 잦아들 기미가 보인다.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제부터 올라간다. 이 동네 마을이란 곳은 모두 언덕에 있다.
14세기에 이 동네 귀족들은 군주제에 대항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하는데..당시 모토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자유'였다고 한다.  나야 뭐 따스한 커피와 쉴 자리를 위해 이 동네를 찾아간다.

광장 옆에 작은 바가 있어, 별 기대 없이 들어가 본다. 커피 한 잔과 보까디오를 시키려고 하니.. 따뜻한 오믈렛으로 먹겠냐고 한다. 당연히 춥고 배고픈 나는 주문을 한다. 스팀이 들어와 젖은 옷가지를 의자에 걸어놓을 수 있고, 게다가 오믈렛과 하몽의 조화 속에 따스한 보까디오라니.. 무지 행복하다. 지금까지 나는 이 바케트 빵속에 따뜻한 것이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맨날 하몽만 넣어 먹다가.. 먹은 이 빵의 맛이란...

일본인이냐고 물어보는 주인에게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일본 지진 이야기를 한다. 뭐 알아 듣지 못하지만, 내가 궁금해 하니 케이블 뉴스 채널을 틀어준다.. 원전폭발과 사람들의 피난 모습이 보인다. 가슴이 아프다..
친절한 주인의 따스한 음식을 먹으며, 뉴스를 계속 본다. 이 길 끝에 평화가 있기를.... 처음으로 길 말고 다른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마을 광장의 교회는 세례자 요한을 성인으로 모신 교회라고 한다. 광장 한복판에 조금은 이색적인 십자가상과 교회의 벽에는 온화한 성모상이 벽화처럼 모셔진 채 지나가는 순례자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기대하지 않고 나선 길에서 작은 기쁨과 축복을 받는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마을의 집 문앞에 노크를 할 수 있는 손잡이..그리고 순례자가 쉬어 갈수 있는 작은 돌의자.. 따스한 마을이다.

오늘의 짧은 여정의 끝, 푸엔떼 라 레이나로 향한다. 길은 아직도 계속된다. 멀리서 보이는 길도 푸엔떼 라 레이나로 향하는 또다른 순례길이다.

  

마을 초입의 호텔을 지나니 금새 마을 앞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레파르도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이다. 물론 1시 밖에 안 된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교회 옆의 큰 건물에 가서 이곳에 묶으려 한다니, 기꺼이 열쇠를 들고 나와서 우리를 받아 주신다. 지금은 수도회 건물이 학교로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일착으로 도착해 1인당 5유로에 이곳에 짐을 푼다.
습하고 썰렁한 알베르게에 침대를 정한 뒤 침낭을 깔아놓고, 샤워실, 세탁실을 둘러보고 잽싸게 신발을 진흙 닦고(보통 말릴 때를 찾는데 오늘은 다시 신고 나간다, 주방에 물품을 확인한 뒤, 수퍼마켓(2시 전에 가지 못하면 6시까지 굶는다)을 찾을 겸 마을 구경을 나간다.

푸엔떼 라 레이나는 왕비의 다리라는 뜻이다. 마요르 왕비가 순례자들을 위해 이곳에 다리를 지으라고 명했고, 그래서 팜플로냐와 에스떼야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물론 무어인으로 부터 이 곳을 지키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마을 중앙의 성당은 탬플기사단을 비롯해 다양한 기사단이 이곳을 관리해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김여사와 나는 이 곳 성당에 잠시 들어가 기도를 하고 나왔다. 나도 기도한다.
(마지막 사진은 산티아고 성인의 성상이다. 모자에 조개 있으면 산티아고 성인이다.)


슈퍼에서 쌀과 소시지(초리스라는 스페인 순대), 문어 통조림(뽈뽀), 피클, 와인(4,500원 정도면 수퍼에서 정말 맛 좋은 와인 한 병을 살 수 있다)을 사서 오랫만에 밥을 해먹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가스불로  밥을 너무 잘한다. 설지도 질지도 않게 밥을 해 미역국과 건조김치에 물을 붓고 둘이 간만에 정식을 먹었다.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모두 다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남들의 하루 일정을 반으로 쪼개면서 이제는 다른 그룹의 순례자를 맞이하는 듯했다.

생장에서부터 본 사람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그들을 그리워하며 김여사가 "마치 패트릭이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고 하자마자 거짓말 같이 패트릭이 다른 독일 사람들과 들어왔다. 놀랍고 반갑다. 헤어지면서 사진까지 찍은 팜플로냐에서 하루 더 쉬고 오늘 30킬로미터를 넘게 걸어 왔단다. 이따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먹었다고 이야기를 전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녹차를 타서 같이 마셨다(이 친구는 알콜이나 커피 등은 입에 대지 않는다. 순례자 메뉴에 이미 똑같은 가격으로 물과 와인 중 하나를 고르라면 우린 무조건 와인인데 이 친구는 무조건 물이다. 서로 신기하다^^)

오후 늦게 비가 그친다. 김여사와 알베르게 위에 있는 작은 동산에 올라간다. 그냥 잠깐 산책을 하려다 어쩌다 올라왔다. 일몰과 함께 이 작은 마을의 야경이 펼쳐진다.  길 밖에서 처음으로 다른 곳을 본 거 같다. 걸어야 하는 마크가 없는 곳에서, 우리가 걸어 온 그리고 걸어 갈 길을 처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알베르게로 가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등 뒤에서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아이에게 영어로 한참을 떠든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고.. 우리야 뭐 한국말로 뒷담화를 푼다.. 저 녀석 저 여자아이 꼬시는 거 같은데.. ㅋㅋ 어쩌구 저쩌구..
글을 쓰며 생각난 사실은 그 후로 그 여자아이와 우리는 참 많은 인연을 가졌다는 것이다. 힘들게 힘들게 그러나 가장 씩씩하게 끝까지 길을 걸은 독일 아가씨 피아.. ㅎㅎ  돌아와서 글 쓰다가 기억해냈다.

푸엔테 라 레이나. 내가 여기를 왜 걷고 있는지 반추할 수 있는 처음의 장소이고, 목적지 보다 중요한 지금 이 길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