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를 넘는다!
해발 1,450미터를 넘는다!
프랑스를 넘어 스페인으로 간다!
그리고 카미노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꾸린다. 침낭을 침낭 주머니에 넣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가방을 싸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린다.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이 있어 조용히 헤드랜턴을 쓰고 짐을 싼다. 그래도 대부분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있다.
새벽부터 움직여야 오늘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첫날 아직 방전이 되지 않은 몸이라 피레네를 넘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알베르게는 유명한 명물이 있는데.. 대접 같은 컵에 주는 모닝커피다. 아침식사는 빵, 버터, 잼, 사발 커피(우유는 각자), 사과 뿐이다. 하지만 투박해 보이는 프랑스 아주머니는 정성으로 빵을 썰어주시고 더 먹으라고 청한다. 신선하지는 않지만 양 것 먹을 수 있는 사과... 스페인으로 넘어가서 아침 식사에 과일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나는 소박하지만 훌륭한 아침식사였다.
아침을 먹고 감사의 포옹을 한 뒤 짐을 들고 밖에 나오니 르푸이(이미 800킬로를 걸어온)에서부터 걸어왔다는 영국의 프래드릭이, 김여사가 주장하는 스트레칭을 하고 난 후 알베르게 앞의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 출발 준비를 마치고 있다.
어제 저녁 아침에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가자고 한 후 잠을 잤는데 아직도 우리는 어느 루트로 갈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니브강을 건너기 직전 우리 머리 위로 왼편에 있는 성당의 종이 울린다. 가던 길에서 몸을 돌려 김여사와 나는 열려진 성당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순례의 시작을 위한 간단한 기도를 드렸다(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지만, 김여사는 그 때의 종소리가 주님이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져 나폴레옹 루트를 선택했다고 한다.) 아직 나는 기도가 익숙하지 않지만.. 이때부터 항상 출발 기도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직 화살표도 이정표도 어색하다..어디로 가라는 건지 헷갈린다. 이럴 때는 앞선 사람을 따라가야 하는데 내가 젤 앞인 듯하다. 스마트폰에서 가이드북을 찾아 길을 찾아간다. 이 와중에도 문을 연 빵 가게를 찾아 빵과 오레오 과자 등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물과 음식을 합치면 내 가방은 이제 12킬로짜리가 넘어 버렸다.
진짜 갈림길이 나왔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으로 쳐들어간 길로 갈 것인가? 찻길과 함께 조금 더 편한 발카루스 길로 갈건인가? 성당의 종소리를 떠올리고는 둘은 고민도 안 하고 나폴레옹 루트로 발을 들였다. 미친 거지.. 미친 거야.. 초반부터 오르막이 심하다. 벌써 땀이 난다. 웃도리도 벗고 발목보호대와 무릎보호대도 착용하기 위해 걸은 지 30분도 안 되서 잠시 휴식이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어제 발칼루스로 가겠다고 이야기하던 다른 사람들도 다 우리처럼 나폴레옹 루트로 오르기 시작한다. 어색하게 서로 "부엔 카미노"(카미노에서의 인사말)를 외치고 앞질러 간다. 다들 간다. 그래 우리도 간다.
끝없는 오르막! 초반부터 씨익 씨익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조금씩 생장에서 멀어지고, 조금씩 고도는 높아진다.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가이드북에 나오는 운토라는 곳은 아직 도착도 못했다.. 아직 km의 개념 정립이 안 되어 있어서인지,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은근 하늘에 구름은 부담스러운 색을 뛰고 있다. 정말 협회에서의 말처럼 정상에 눈이나 비가 오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2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운토에 도착했지만, 이곳에 있어야 할 알베르게는 문을 열지도 않았다.
뷰 포인트 같은 곳에서 벌써 힘들어 잠시 곯아떨어진 김여사(김여사는 여길 오기 위해 한 달 넘게 주말도 없이 일만 했다. 체력이 바닥이다). 우리가 정말 여기를 넘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요 밑에 식수대 같은게 있는데 영 믿음이 안 간다. 그래도 난 여기서 물맛을 보고 물을 가득 담았다(만약 여기서 물 보충을 안 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피레네의 물 맛은 정말이지... 너무나 달콤하고 시원했다.
꿀 같은 휴식 뒤에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다리는 힘들지만 눈은 점점 호강이다. 건너편으로 또 하나의 능선이 보이고, 구름과 하늘과 산 그리고 이곳에 모여 산다는 흰머리 독수리들은 계속 하늘 위를 날으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서식지란다. 순례자 보고 '너 퍼지면 내가 간다'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꾸역꾸역 그래도 8킬로미터 지점의 오리송 알베르게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문을 열었다면(4월에 문을 연다) 여기서 1박을 해서 이 힘든 시련을 멈출 수 있었는데, 젠장 더욱이 여기서 물을 또 보충하려 했지만, 식수대는 잠긴 채 신발만 걸려 있다.
이 미친 오르막은 계속된다. 여기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독일 친구 패트릭을 만났다. 오레오 과자 두 쪽 나눠 먹고 친구가 된 거였다. 패트릭이 이 날 우리에게 한 말은 두고두고 내가 그를 약올리는 말이 되었는데. "나는 걸음이 빨라서 먼저 가겠다~~~" 패트릭은 이날 오버 워킹으로 무릎에 무리가 가서 몇 일 뒤 퍼진다. ㅋㅋ
김여사와 내가 거의 퍼질려고 하는 순간. 멀리서 성모상이 보였다. 이런 산 정상에 왠 성모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뚱맞은 곳이었다. 김여사는 가방을 내려 놓고 기도하러 갔고(왜 울지?), 나는 가방을 집어 던지고 투덜투덜 되면서 쉬었다. 아마 요쯤이 오리송봉이었나보다. 멀리서 야생마까지 뛰어다니는 신기한 곳. 뭔가 나올듯 올라가 보면 또 올라가야 되는 곳. 아... 슬슬 밀려왔다.
그렇게 오르고 오르니 뭔가 또 나오긴 나왔다. 요기서 또 올라가라는 마크다. 입에서는 슬슬 욕이 나온다. 아 나폴레옹 밑에서 내가 군생활을 안해서 다행이지.... 허걱! 갑자기 안개가 순식간에 몰려온다. 얼른 일어나 다시 길을 간다.
쉬엄쉬엄 간다지만.. 슬슬 춥고 배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다행이 가방의 무게가 많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신기하다.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한 십자가에 온 듯하다. '이제 마지막 고비만 남았다'라고 섣부른 생각을 했다.
이제는 음산한 숲길이다. 낭떠러지 사이로 너도 밤나무가 안개까지 머금은 채 나를 기다린다. 이 작은 길을 넘어가면 스페인으로 들어갈 수 있다. 눈이 갓 녹았는지.. 길 사이로 물줄기는 가득하고 오랜 세월 쌓여 온 낙엽과 흙이 질퍽이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걷기 시작한지 6시간이 훨씬 넘어갔다.
물통에 물이 떨어질 무렵 롤랑의 샘에 당도했지만.. 못 마시는 물이라는 마크가 달랑 붙어있다. 롤랑의 숲을 끝으로 스페인이다. 이제 나는 스페인으로 넘어 온 것이다. 이곳에 대피소도 자리잡고 있는데... 예전의 국경 초소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곳곳에 이 길에서 죽은 순례자들의 무덤이 보인다.
스페인에 들어서니 이제부터는 눈이 쌓여있다. 3월에 오르는 산에 눈이라니..가져온 스패츠를 착용해야 하나..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우리는 서로 폼잡고 인증샷을 확실하게 촬영한다. 요 사진이 두고두고 사랑받는 사진이 될 듯하다. 마치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이 모습...ㅋㅋ 근데 난 정말 여기까지가 한계였을지 모른다.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어렵다는 말을 실감했다.
조금 전에 겨울이었던 피레네의 내리막은 이제 가을이다. 금방 나올 것 같던 론세스바예스는 나오지 않고 5시는 넘어간다. 이제 인내의 한계다. 이제부터는 대 놓고 욕을 한다. 욕을 하며 아니 외치며 내려간다.. "아, 쓰~~~~* 왜 안나오냐!"고 짜증내며 소리를 질러도 안 나온다. 금방 나올 듯 나올 듯 꺽어보면 안 나오고 꺽어보면 안 나오고... 나중에 패트릭이 하는 말 어떤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내려가는 지 궁금했단다.
결국 도착했다! 왔다! 만세를 불렀다! 이경환과 김여사는 론세스바예스의 수도원과 대성당에 도착을 했다. 12세기 이후 이곳은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기독교인이건 유대교인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나를 보호했다고 한다. 오늘은 이 가엾은 두 한국인을 보호해 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6시가 넘었다.. 12시간 가까이 걸었다.. 길고 험난한 하루였다.
알베르게 숙박료로 1인당 6유로씩에 자리를 맡고 보니, 일본인 친구 캔이 이미 도착해 있다. 캔은 발칼로스 루트로 2시 경에 도착했단다. 이 친구는 짐이 우리 반도 안 된다. 30일 일정이라 내일 팜플로냐까지 간다고 한다. 아 우리의 이틀 경로인데 ㅜㅜ;:
저녁 7시의 미사 때문에 정신 없이 씻고 성당으로 갔다. 각 나라 말로 축복해주시는 신부님의 어색한 한국말. 하지만 이제 진정한 순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다리는 풀리고 미사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발이 너무 아!프!다! ㅜㅜ
정신없이 헤메이는 와중에 이미 와 있는 인수씨와 첨 인사를 했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덴마크에서 온 이바와 크리스티나 할머니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첨으로 먹어보는 메뉴 델 페레그리노(순례자 메뉴). 1인당 9유로에 코스메뉴와 디저트 그리고 와인 한 병이 나온다.. 오늘 와인한 병 까고 잠이 든다. 길고 고단하고 험한 하루다.
걱정과 염려로 뒤덥힌 피레네를 넘는 길 32킬로미터를 내가 해냈다.
나는 지금 해발 950미터 스페인의 중세 수도원에서 잠을 잔다. 나는 무어인들의 지배에도 굴하지 않고 기독교 왕국을 지켰던 스페인의 나바르에 와 있다.
* 오르막을 오를 때 나도 모르게 묵주기도 중 고통의 신비를 하게 된다. 스틱 때문에 묵주를 잡을 수 없어 손가락으로 대신한다. 자꾸 성모송을 몇 번 했는지도 잊어버린다. 그래도 운율 때문인지 오르막을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기도하고 있으면 뚠은 내가 힘들어 아무 말이 없는 줄 알고 자꾸 말을 시킨다.
몇 달 전,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 학교 관둘래요. 그리고 3월에 산티아고 가려구요.", "거기가 어딘데?", "스페인요. 한 800킬로미터를 한달 넘게 꼬박 걸어가야 되는 순례길이예요." 아버지는 너무 담담한 어조로 말하셨다 "성당이나 다니지.", "큰 죄인이라 순례라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의 말씀이 너무나 지당하셔 허를 찔린 것 같았다. 3년 째 냉담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떠나기 전에 미사 참석하고 고해성사는 봤다.
그런데 오늘... 떠날 때 종소리부터 그러더니 피레네 넘으면서 묵주기도하고(이건 내가 살기 위해서) 벼랑 끝에 성모님 뵙고는 배낭 팽개치고 달려가서 눈물 펑펑 쏟고, 결국 이곳에 도착해서 걷기도 힘든데 미사 보러 가서 또 눈물바람이고...
우울증인가 자꾸 눈물이 난다. 역시 내가 기댈 곳은 그 분들 뿐이다. 살아서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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