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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4 -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3월 14일, 23Km)


내가 산티아고를 걸을 수 있는 체력일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무릎 관절염을 앓아왔다. 체육은 '수'를 받은 적이 없다.
거기다 3년 전부터 통풍이 시작되어 곱창과 맥주를 과감히 끊기도 했다.
나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열심이지만, 사실 5년 전 남한산성을 오르다 호흡 곤란을 일으킨 무시무시한 산사나이(?)다.

그럼 난 뭘 준비했나?
담배를 끊었다.. 설날 연휴 이튿날부터니까 이제 한달이 조금 넘는 상태
석촌호수를 하루에 2-3바퀴 걸었다. 맨 몸에 그 쿠션 있는 곳을 열심히 ㅎㅎ
말 잘 듣는 근육진통제(이브프로펜계열)를 60알 준비했다.

론세스바예스 -부르게테 - 에스피날 - 헤렌디아인/비스카레트 - 린소아인 - 주비리

                                           

                                                         <출처 : 산티아고 가이드북, 넥서스, 2010>

어제의 경험 상, 오늘은 일찍 일어나기로 했다. 피곤으로 곯아떨어졌지만, 잠결에도 발목과 무릎이 슬슬 아파온다. 무엇을 등에 지고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다가 불어있는 몸의 하중은 모두 이곳으로 전달되나보다.
6시경 일어나. 어둠 속에 침낭, 가방, 널려진 짐 등을 대충 들고 복도로 나갔다. 한국에서 민박집과 팬션 여행만 하던 우리에게 아침마다 침낭을 정리하고 배낭을 다시 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복도에는 캔과 더불어 두세 명의 사람들이 벌써 출발 준비 중이다. 그 외 20여명은 그냥 자거나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김여사의 강요에 의해 역시 오늘도 스트레칭을 한다. 예민할 때는 말을 잘 들어줘야 싸움이 안 생긴다.
해는 뜰 생각도 안하는 6시 30분 경 머리에 헤드렌턴을 켜고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 지 화살표가 잘 안 보인다. 일단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한다.
먼저 출발했던 영국친구 프래드릭이 쓰윽 우리들에게 붙는다. 그는 랜턴이 없어서 우리의 불빛에 의지해 길을 걸을 요량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를 가운데 세우고 좁은 숲길을 3명이 일렬로 걷는다. 춥고 어두운  숲길에 저벅저벅 발소리만 난다. 인적도 없는 곳이라 맨 뒤에서 걷는 김여사가 무서울까봐 간간히 이름을 불러준다.
어둠 속의 잰걸음이라 30분 만에 부르게테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헤밍웨이가 이곳에 자주 묶었다는데, 그건 관심도 없다. 이미 배가 고프고 추운 우리는 어디 문을 연 바가 있는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순례자가 적은 시즌에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문을 연 바는 한 곳도 없다.

더욱이 길을 걷다 김여사는 안경을 두고 온 거 같다고 한다. 나는 찾으러 다시 가야 한다고 하고 김여사는 그냥 가자고 한다. 다행이도 나중에 안경은 가방 안쪽에서 나왔다. 

배 고프고 추운 우리는 빵과 커피 생각이 절실했지만, 어디도 문을 연 곳은 없다. 일단 다음 마을로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 여명과 함께 빗방울이 내리려 한다. 부슬비는 고어택스로 커버하기로 하고 걸음을 옮기니 비가 조금 오고서는 이내 멈춘다. 진땅 마른땅 구분하면서 다음 마을까지 꾸역꾸역 걸었다.
오늘 아침 길은 아직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했지만, 신선한 공기를 느낄 만큼의 조금의 여유는 있다.

에스피날이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배가 고프고 춥다. 어제 먹은 고기 몇 점과 감자로는 우리의 탄수화물 소화력을 따라 갈 수 없지 않은가? 밥이 필요해... 아니 따뜻한 물이라도 ㅜㅜ
마을 한가운데 있는 바도 빵 집 같은 것도 9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나가는 것이라고는 청소 차량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결국 바람 불고 황량한 마을 광장 벤취에서 어제 먹다 남은 치즈나 과자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먹을 요량으로 이거 저거 꺼내고 있는데.. 바로 옆 벽에 있는 창문을 빼곰 열고 잠옷 바람의 할아버지가 우릴 쳐다보신다.
영어로 뜨거운 물 좀 얻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문을 열고 나오신다. 뭐라뭐라 스페인어를 하신다. 김여사가 단어장을 꺼내 아구아 갈리엔떼(뜨거운 물)이라고 하자 들어 오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겠구나 싶어 기쁜 마음에 컵을 들고 들어가니, 할아버지가 부엌 싱크대의 온수를 틀어주신다. 차를 마실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안 통한다. 그냥 부엌의 미지근한 온수 받아서 나왔다. 우..린.. 그래도 그 물에 녹차를 마셨다.
아 ~ 배고프고 춥고 이제는 하나 더해 답답하다...  다시 쳐진 몸과 마음을 추스려 길을 떠나려는데 

아까 레인커버 씌울 때 앞서간 프레드릭과 캔을 만났다. 그들  왈, 길에서 벗어난 구석에 카페가 문을 열어서 자기는 아침을 먹었단다. 우이쒸~~ !!!, 여기서 한 5분 정도 가면 된단다.
김여사와 나의 신조, '절대 100은 없다!' 전진이다.


아직 허기를 안고 그냥 다음 마을을 향한다. 너도밤나무숲이 쫘악 펼쳐진다. 우리는 여기서 노방(노상방뇨)을 위해 잠시 쉬기로 했다. 그때 이태리에서 온 작지만 씩씩한 마르코가 지나가고 그 뒤로 프레드릭과 패트릭 등 다른 순례자들이 지나간다. 우리도 다시 걷는다.

메스키리스 봉(930미터)을 올라가니 우리나라 초봄 산의 모습이다. 춥고 배고프고 서럽지만, 이쁜 건 이쁜 거니까.. 그래도 아직 경치나 주변 사물을 충분히 즐기기 보다는 걷는 게, 배고픈 게 중요했다.
이 산 밑에 우리가 찾아가야하는 강(사실 작은 개울)의 이름은 '에로강'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넘어야 할 봉우리 이름은 '에로봉!' 나는 계속해서 에로강 에로강 타령을 하면서.. 춥고 배고프고 서럽고 야한 이야기만 하면서 길을 걷는다.

다행이 헤레디아인에서 카페(별로 친절하지 않은)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까디오(바케트에 하몽 등을 넣어 먹는 빵)와 카페콘레체(밀크 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이날 내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일찍 일어나는 새는 아침을 못먹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 실수를 한다. 마을 끝에 슈퍼가 있었지만 물과  음료 등의  보충을 안 하고 그냥 걸었다 (사실 카미노에서 대부분 물은 그냥 수도물을 먹거나 길가의 식수대에서 뜨면 된다. 그러나 대도시에서는 생수를 사서 먹었다.) 가이드북에는 다음 마을에 식수대 마크가 있어서 그냥 통과한 것이 조금 문제가 되었다.
갈증은 사람을 많이 지치게 한다. 특히 충분한 수분의 공급이 중요한데.. 이 날은 그러지 못했다.

 

 계속되는 갈증과 숲길에 조금씩 지치기 시작한다. 린소아인에서 물을 보충해야 하는데 식수대를 찾을 길이 없다. 쥬비리까지 8킬로가 남았고 810미터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우리가 헉헉되는 사이 스페인 순례자인 거구의 알베르토가 이온음료와 물통을 비니루에 넣어 한 손에 들고 씩씩하게 올라간다. 적어도 3킬로가 넘을 것 같은 그 무게를 보니 음료와 물이 별로 부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걷는 것만도 신기한데 참 잘 걷는다. 쉬지 않고 것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친구는 옷과 장비가 기능성이 아니라 완전히 땀에 쩐다. 그래도 뒤에서 그의 걷는 모습과 웃으면서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스페인어를 날리는 모습에 점점 귀엽다는 느낌이 든다.

 

힘들어 죽겠는데.. 위트있는 표지판이 보인다.. 멈추지 말고 걸으라니 걸어야지...

앉아서 조금 쉬고 있으려니 이바와 크리스티나가 지나간다.
둘 다 할머니다(약 60대 후반 정도). 크리스티나는 이미 한 차례 이 길을 걸었었고 이바는 초행이다. 작년에 이 길에서 발목을 다쳐 크리스티나는 초반에 이바가 걷는 것만 도와주고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쩔뚝거리면서도 초행인 친구의 카미노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친구다. 이미 걸었던 사람들의 가방은 언제나 단촐하다..
부럽다. 좋은 친구가 부럽고 가벼운 가방이 부럽다.

이 날 신기한 모습을 엄청나게 보았다. 맨처음 뱀인지 알고 소스라쳤는데, 송충이들이 떼를 지어 길을 건너는 것이다. 길을 가는 내내 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진짜 징그러운 대군을 열 걸음에 한 번씩 보아야 한다.

그래도 새벽같이 나와 길을 걷다보니 2시가 조금 넘어 쥬비리에 도착이다.
"저 작은 마을이구나."
가이드북은 여길 넘어 라라소나까지 가라고 하지만, 못 간다.
달랑 20여킬로 걸으면서 엄살이 심하다는 분 많겠지만, 찌찔해 보여도 난 힘들고 죽겠다.

 

쥬비리의 다리도 역사와 사연이 깊은 다리다. 이 다리를 3번 왕복하는 가축은 병이 다 났는단다. 공수병을 고치는 다리. 그래서 이름이 라비야(공수병) 다리란다.
인간도 동물이니 내 병도 고쳐줄련지.. 좌우지간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사설 알베르게가 나왔고, 무조건 투숙이다.

1인당 10유로에 묶는다. 더 걷기도 귀찮아 이곳에 묶었지만 큰 길 건너편에 커다란 지자체 알베르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공사 중이란다. 오늘 이 알베르게는 만원이다. 그러나 여기는 WIFI도 터지고, 인터넷도 무료다. 더욱이 바지 밑단이 더러워지자. 청결을 강조하시는 김여사는 6유로에 세탁과 건조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다.

맥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고(요 때까지 맥주는 허락 맡고 먹어야하는 음료), 일단 씻고 맥주한잔 때리고, 알베르게앞 벤치에서 맨소래담(아~~) 마사지 시작이다. 오른쪽 발목의 통증은 예사롭지 않다.

오늘의 교훈으로 내일은 아침용 빵과 간식을 미리 가게에서 준비하기로 했다(근데 왜 와인을 샀을까? ㅎㅎ). 가게를 찾아 헤멨지만 찾을 길이 없다. 가게는 간판도 없고 그냥 어느 순간 문 열면 아 거기가 가게였구나 할 정도다(2시에서 6시에 대부분 샷시를 내린다, 빌어먹을 시에스타).
다행히 론세스에서 만난 인수씨(아직은 별로 안 친한 상태)가 가게위치를 알려줬다. 난 푸줏간인 줄 알았는데 가게였다.

그리고 알베르게 인근 레스토랑에서 인당 11유로짜리 메뉴델페레그리노(순례자 메뉴)를 먹어준다. 오늘도 물론 와인 한 병(메뉴속에 가격 포함되어 있음)을 먹어준다. 그리고 스페인 전통술 바체란도 한 잔. 뭔지 모르고 너 먹는 거 뭐냐 물어서 그냥 먹어봤다.. ㅎㅎ
닭고기는 조금 질겼다. 길가다 보면 질긴 이유 알 거 같다.. 다 풀어 놓고 기른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메뉴는 맛있고 배부르다. 와인은 맛나다. 특히 우리는 걷는 내내 각 지역의 와인을 매일(하루도 안 빼고) 먹어봐서 각 지역의 와인을 조금 비교할 수 있게 되었는데, Navarra산 와인의 기억이 좋다.


알베르게 자판기에 땅콩그림이 있어서 내일 길 걸으며 먹어야지 하고 샀더니.. 생껍질도 안 벗긴 땅콩이 딱 나온다.. 지금 강가에 둘이 앉아 땅콩까고 있다. 내일 맛나게 먹으려고 ㅋㅋ..  동네 꼬마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떠들고, 한국인 아저씨 아줌마는 벤치에서 땅콩을 까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스마트폰으로 체크한 일기예보에는 금요일까지는 비가 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