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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7 - 아르수아에서 라바코야까지 (4월 16일, 31km)

길을 함께 걷던 사람들이 생각 났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 이틀차를 두고 공유되는 사람들이 많다. 인수씨는 추위에 떨며 조그만 시골의 식당도 가게도 없는 알베르게에서 가방에 먹을 것들을 전부 꺼내 함께 먹던 패트릭을 생각했고, 나는 밤새 화장실에서 토하던 쥴리를 생각했다. 김여사는 곤사르에서 발가락이 거의 찟겨진 한 아주머니를 이야기한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했던 카미노..... 

아르수아 - 카예 - 옥센 - 오엠피아메 - 아르카 도 피노 - 아메날 - 비행장 - 라바코야

남은 밥을 끓여 먹고, 여유있게 출발을 했다. 마을의 큰길 방향으로 나가다 작은 골목길을 따라 길을 걷는다. 가방은 피노의 한 알베르게로 미리 발송을 했기에 거의 빈손에 스틱만 들고 출발을 한다.

작은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 길 속의 작은 이야기를 비석으로 기념비로 남겨둔 사람들이 있다. 언어의 차이는 있지만 이 길을 걷는 과정의 공감대 만큼은 충분하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서 순례자의 수는 늘어나고 걷는 길 내내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아침의 햇살 속에 1차 목적지는 오피노까지를 두고 걷는다. 많은 순례자들이 아침부터 움직이고 있다. 큰 가방을 짊어지고 허름한 차림에 걷는 사람부터, 단촐한 차림의 깔끔한 사람까지..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는 언제 산티아고로 들어갈 것인지 물어보며.. 이야기를 한다.  모두들 초점은 몇일날 몇시에 산티아고로 들어갈 지 이다.

코르도페 마을을 지나 숲길에 접어 들었을때 한 부부가 뛰면서 길을 간다. 카미노 길에서 뛰어 가는 것은 보기 드문일이다. 일단 무릎을 많이 상하기 때문이다. 무슨 급한일이 있는 거 같지 않은데 뛰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 까지하다.
저녁에 우연히 같은 바에서 다시 그 부부가 보이길래 물어보니 바르셀로나에서 와서 사리아부터 걷는데 힘들어서 뛰어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 이해가 안된다.

라드롱 다리를 지나 카예 마을의 한 바에서 잠시 쉬어갈까 하다가 옆의 밭에 농약을 뿌리고 있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유대인 쌍둥이를 다시 만났다. 지갑을 잃어 버렸지만 사람들의 도움과 연락을 해서 산티아고까지 일단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금전적인 문제로 조금 빠듯하지만 다행이 끝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카예에서 살세다로 가는 길에 속이 부글거리며 갑자기 신호가 왔다. 카미노를 걷는 도중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장트러블이다. 숲길에서 약간 벗어난 길이라 대로변에서 용변을 보기는 힘들거 같고 지도에 살세다에 바가 있다고 하니 일단 먼저 가겠다고 하며 달리듯이 간다.
가는 길에 한 동양인이 비닐 봉지를 들고 역방향으로 걷는다. 생리현상으로 인한 와중에도 한국분인가 물어보니 산티아고에서 역방향으로 걷는다고 하신다. 일단 간단한 인사만 하고 나는 살세다의 바로 달려 들어간다.
혹시 나를 못찾을까봐 스틱을 가게 앞에두고 화장실에 가서 다 쏫아낸다. 시원했다.

잠시뒤 김여사와 인수씨가 바에 왔다 일단 볼일을 본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간단하게 살세다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바에 나와 보니 핀란드 아가씨와 북유럽 친구들이 몇명 보인다 인사를 하고 길을 오르니 기예르모 와트의 기념석이 있다.
산티아고를 20여킬로 앞두고 유명을 달리한 사람이다. 단 하루만 더 버텼더라면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쳤을 텐데, 그의 아쉬움을 많은 순례자들이 함께 해준다.

이제 20킬로가 남았다. 정말 산티아고가 눈에 보일거 같지만, 20킬로는 쉽지 않은 거리이다. 옥센 마을을 지나 오엠피아메의 도로변의 바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먹으며 쉬어간다. 나서는 길에 물도 보충을 하니 눈에 띠게 사람들이 많다.
술길을 포기하고 주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른다. 산타 이레네 언덕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가려니 알베르게 광고판에 센서가 부착되어 홍보를 하고 있다. 숲길에는 무인점포도 눈에 보인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 오 피노에 도착을 한다.

벌써 한낮의 더위가 가득하다. 산티아고의 위성도시 인 이 곳의 알베르게에서 가방을 찾고 잠시 고민을 한다.
여기서 산티아고까지 가는길에는 중간에 쉴만한 숙소가 마땅치 앉다.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호텔이든 팬션이든 있을테니 더 가자고 이야기한다. 가능하면 산티아고에 이른 아침에 들어가는 방향으로 하자고, 그리고 정오 미사도 보는게 좋지 않겠냐고 설득을 했다.

오 피노의 외곽으로 빠지는 길은 조금 특이한 숲길을 가로지른다. 약 4킬로 정도를 다시 가방을 짊어지고 걸어간다. 3시가 조금 지날 무렵 더위와 무게감 그리고 방전된 체력을 소진하며 숲에서 나온다.

국도 밑 터널을 빠져나와 제법 큰 바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며 쉰다. 덴마크인 부부와 함께 서로 이제 다왔다고 자축하며 맥주를 함께 마신다. 저분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신다. 하지만 말은 다 통한다. 아주머니의 발은 완전히 갈라지고 피투성이가 된걸 김여사는 보고 쇼킹했었단다.

4시가 거의 다될 무렵 언덕을 올라 공항옆 산파요 근처에 도착한다. 오르는 길에 북쪽길을 걸어오신 한 독일아줌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점점 몸이 힘들어지니 대화하기도 힘들어졌다. 어렵게 언덕을 오르니 햇빛은 뜨겁다.

 지도상으로도 3-4킬로를 더 가야 뭔가 묶을 만한 곳이 나올꺼 같다. 공항근처라 뭔가 숙소같은 것이 있을꺼라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다. 공항길을 따라 가다 다시 터널을 지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마을에 도착을 한다.

잘 가꾸어진 도시외곽의 마을에는 인적은 하나도 없다. 4시 30분이 다되어 가는데 호텔마크는 있지만 돌아가는 것 같고 일단 마을 체육관같은 곳 둔턱의 그늘에서 3명이 등을 깔고 들어 눕는다. 한참을 쉬다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페인 아가씨와 독일인 청년인 짝을 이뤄서 걷고 있다. 젊다는 것은 카미노에서도 저렇게 짝을 이루나 하면서 처다본다.

라바코야까지 가면 숙소가 있을 거라고 우리도 서로 토닥거리며  다시 걷는다. 내리막을 내려가 조금 걷다 보니 다시 마을이 나온다. 여기저기 팬션등의 글자가 보인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더는 못걷는다. 여기서 자야한다. 호스텔이라고 적힌 바에 들어가서 방이 있냐 3명이 묶을 거라고하니 40유로에 3명이 한방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2층을 올라가 방을 잡는다.
잠시 바에 내려와 맥주를 시키고 있자니 오늘 길에서 본 몇몇 사람들도 이곳으로 들어온다.

이 날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경기가 있어서 바는 계속 시끄러웠다. 우리는 카미노 길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맛나게 먹고 내일은 아주 일찍 일어나서 일출과 함께 산티아고에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