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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14 - 벨로라도에서 아헤스까지(3월 24일, 29km 심정적으로 40km)

일주일 뒤를, 한달 뒤를, 일년 뒤를 걱정하던 삶에서 잠시 달랑 오늘 하루를 걱정하는 삶으로 변경되었다.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소변을 보고, 어디서 잘지, 그리고 얼마나 걸어갈지.. 다른 고민들은 없다. 그저 나의 육체, 길, 날씨 동반자의 상태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대책 없이 걷기만 하는 이런 삶이 차라리 행복이라 느끼는 걸 보면.. 우리는 왠간히 찌들어 살았나 보다.

벨로라도 - 토산토스 - 비얌비스티아 - 에스피노사 - 비야프랑카 -
카이도스 기념비 - 페드라하 고개 - 산 후안 데 오르테가 - 아헤스

빵과 차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서려니 하늘은 우중충하고 몸이 시리다. 오늘은 해발 1,100미터 이상의 산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부담이 된다. 더욱이 산 후안 데 오르테가의 알베르게가 벌레와 불친절로 악명이 높다고해서 더 부담스럽다.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에서의 출발이라 벨로라도 마을을 가로질러야 한다. 초입에서는 외관이 무너진 채 종탑만 있는 성당이 보인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순례길과 관련된 벽화와 조각들이 즐비하다. 길가에 공립 알베르게인 듯한 곳을 지나치니, 모두들 이미 출발한 듯 조용하다.

마을 밖으로 나가기 전에 가랑비가 내린다. 건물의 처마 밑에서 언제든 우비를 꺼낼 수 있도록 하고 레인커버를 씌운다. 마을 외곽에 흐르는 티론강의 목제 인도교를 지나니 밀밭 가득한 시골길이 나타난다.

  

아침의 차가운 기운이 몸 속으로 퍼진다. 입에서는 입김이 난다. 한 시간 여를 걷자 토산토스가 나타난다. 마을 초입에서 잠시 온기라도 느낄 요량으로 바에 들어가 본다.
바에는 어제 다른 알베르게에 묶었던 셰마가 쉬고 있다. 오늘 어디까지 갈 거냐는 이야기에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생각하는데 다들 비추라 걱정이라고 하니 아헤스에 자기가 묶을 알베르게를 알려주며 저녁에 거기서 보자고 한다. 일단 가능하면 그러겠노라고 했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얼추 30킬로를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가능할런지....

오늘은 띄엄띄엄 마을이 자주 있다. 그래도 목표지점이 가까이 하나씩 있으면 걸음이 편해진다. 괜한 성취감으로 한 단계 한단계 밟아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비얌비스티아와 에스피노사를 빠르게 지나간다. 일단은 3개의 봉우리를 넘기 전의 마을인 비야프랑카를 목표로 부지런히 걸어간다.

마을을 지나니 모사라베 양식 아치가 있는 산 펠리세스 데 오카 수도원의 9세기 유적이 보인다. 여기에 부르고스를 설립한 디에고 포르셀로스 백작이 묻혀있다는 데 생각보다 작은 규모였다. 우중충한 날씨라 시야가 좁은데 아까부터 작은 돌멩이가 신발 안을 굴러다니는지 자꾸 발이 신경 쓰인다. 잠시 쉬어갈 만한 곳이 나오면 발을 풀어야지 하며 미련하게 계속 걷는다.

보슬비 때문에 신발에 돌을 꺼내지 않고 걷다가 결국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다. 찻길과 연결된 아스팔트가 나타나자 가방을 집어 던지고 신발을 풀어헤친다. 신발에서 발을 빼내는데 발목도 아프고, 복숭아뼈의 통증이 장난이 아니다. 생리대 3개를 복숭아뼈에 붙여놨는데도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그래도 일단 비야브랑카까지는 가야한다. 그곳에 가야 처마 밑이든 바든 비를 피해 잠시 쉴 수 있을 듯하다.

비야브랑카에 도착하니 마을 한복판 삼거리에 큰 바가 하나 있다. 구석에 앉아서 우선 신발부터 풀어 해친다. 또띠야 드 빠따따와 커피를 시켜 놓고 점심을 먹으니 몸 안에 온기가 조금은 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비가 와서 서늘하다. 고어텍스 외투 안의 방한복도 땀과 습기로 젖어있다.
바의 바닥은 빵가루가 톱밥가루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여기서는 쓰레기를 모두 바닥에 버리는데 바의 바닥이 지저분한 곳이 장사가 잘 되는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식사 중인데 옆에서 빗자루로 빵가루를 쓸고 있는 것은 좀 그러네.... 

이제부터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긴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보슬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바를 나와서 길을 오르려니 에스토니아 삼총사는 문 닫힌 알베르게 앞에서 쉬고 있다. 오르막을 오르려다 진흙길을 보고 스패치를 착용하기 위해 멈췄다. 벨로라도에서 본 영국 여자가 길을 올라온다. 인사를 하고 앞으로 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자 식사와 물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내려간다. 

첫 번째 고개를 올라가니 뷰포인트가 나온다. 산은 구름인지 안개인지로 가득 차 시야가 흐리다. 멀리 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산 길에 안개까지 낀 길이다 보니 왠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진다.

만약 이런 숲의 안개 속을 혼자 걷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실 몇 백년 전 이 길은 순례자에게 악명 높은 산적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순례자를 약탈하는 산적도 없고, 과거의 순례자보다 더 편안한 복장과 도구를 이용하며 편안하게 걸으면서도 나는 종일 투덜된다.

오크나무 숲길을 얼마 못 가 진흙길이 나왔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서 안개는 서서히 거치고 있다. 끝없어 보이는 숲길을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걸어가려니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이럴 때는 40대 아저씨의 심장을 뛰게할 걸그룹의 음악이 필요하다. 

잠시 쉬어가자고 해봤지만, 김여사는 조금 더 가서 쉬자고 한다. 앞 뒤로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비니를 눌러써도 춥기만 하다. 곧게 뻗은 길을 걷다 나온 카이도스 기념비 앞 갈림길에서 세심하게 주의를 하지 않고 지나간다.  
조금 걷다보니 풍력발전기가 즐비하고 바람이 너무 세서 몸이 휘청거린다. 노란색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김여사가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본다. 내가 조금 더 가보자고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을 때는 빨리 마지막 화살표를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나의 고집이 몇 킬로를 더 걸어가게 했다.
미안한 마음에 되돌아가면서 사탕을 주었지만, 김여사는 힘들어하며 퉁퉁거린다.

카이도스 기념비(스페인 내전 당시 전사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 앞으로 와서 결국 길을 다시 찾았다. 해발 1,020미터에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언덕에서 빵을 먹으며 쉬기로 했다. 배낭으로 바람을 막아도 보았지만 거센 바람에 날리는 비닐을 잡으러 다니면서 추위에 떨면서 정신없이 허기를 채웠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진작에 여기서 쉬었다면 잘못된 길로 가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숲길을 계속해서 걷는다. 사람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소나무 숲길은 몇 시간을 걸어도 끝이 없다. 작은 길이 이어지는가 하면 갑자기 공사를 하는 양 넓은 길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간간히 노란색 화살표가 길을 안내한다. 아까 길을 잃어서 온통 화살표에 집중하면서 걷는다.

길을 가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보인다. 가이드북에 있다는 예배당은 도통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지금은 4월 하순이지만 이 길은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의 모습이다. 낙옆 사이로 신발을 벗고 쉬고 있자니, 순례자 한 두 명이 지나간다. 이 숲을 걸으면서 처음 본 사람인 듯하다.

내리막이다. 이제 이 길고 긴 해발 1,000미터 위의 숲길이 끝나나보다. 숲길을 내려와 경작지들이 보이니 반갑다. 멀리 마을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날씨도 좋고 건강한 몸으로 이 길을 걸었다면 정말 이쁘고 환상적이었을 텐데... 나는 이 아름다운 숲을 그저 빨리 지나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걸어간 것이 못내 아쉽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15세기 이사벨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고 아이를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 전에는 이 곳 교구 신부인 호세 마리아가 순례자들에게 빵과 마늘 수프를 대접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가 죽은 후 불과 몇 년만에 순례자들이 비추하는 대표적인 알베르게 중에 하나가 된 것이 마음이 아프다. 

마을 끝자락에 바에 들어갔다. 장작으로 난로를 지피고 있었다. 늙은 커다란 개가 차지하고 있던 이 난로 옆자리를 빼앗고 맥주와 커피를 시켰다. 친절한 젊은 주인과 이렇게 이쁜 마을을 왜 순례자들이 그냥 지나치는지 물어보니, 그저 각자의 생각들이 달라서 그러지 않겠느냐는 듯 무심히 답을 한다. 솔직히 체력도 방전되고, 따스한 바도 좋아서 이곳에 묶고 싶었지만... 셰마와 약속한 아헤스까지 가기로 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를 벗어나서 다시 작은 숲길을 걷는다. 5킬로만 걸어가면 마을이 나올텐데, 평상 시 가방 없이 한시간 넘게면 가는 거리인데...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눈 앞으로 내려온 햇빛이 몸을 더 힘들게 한다. 그래도 숲길 멀리 평원과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좌우로 펼쳐지며 우리를 위로한다. 목적지는 보이지 않지만 내일 하루만 더 걸으면 부르고스라는 생각에 욕심을 내본다. 부르고스에서는 하루를 더 쉬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큰 도시에서는 순례자가 많지 않을 경우 1박을 추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들었다.).

멀리 마을이 나타났다. 오늘의 목적지 아헤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을 내려가서 작은 마을을 둘러보니 3개의 알베르게가 있다.
50대 스페인 친구 셰마와 약속한 엘 파하르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간다.  결국 5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받으며 저녁식사와 내일 아침 그리고 숙박비를 포함해 일인당 약 25유로씩을 냈다.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힘이 쫘악 풀린다. 2층에서 내려 온 셰마가 반갑게 맞아주며 방을 안내해 준다. 낯설은 몇몇 사람과는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으려니 2층 침대의 아래칸은 만석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운이 좋아 아래 칸에 자리 잡았는데.. ㅜㅜ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스패치와 신발 등을 닦고 나서 빨래를 말리려고 나왔는데 마을에 성당이 있다고 한다. 미사가 끝났는데 우리가 가고 싶어하자 교회 앞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한 할머니가 '이글레시아스' 하며 물어보신다. '씨' 하니까 망치만한(진짜 망치 크기다) 열쇠를 들고 교회 문을 열어주신다. 아~!!! 이 작고 아담한 교회의 소박하고 오래된 성물들과 교회의 운치. 김여사가 조용히 기도를 하고 나는 살며시 주위를 둘러본다. 나바르 왕국의 왕 돈 가르시아가 묻혀 있다고 하는데, 그냥 교회의 작고 아담한 분위기가 맘을 고요하게 한다. 

 

저녁은 1층의 작은 공간에 탁자에서 빽빽하게 들어 앉아 다 같이 먹는다. 메뉴는 한 가지. 차라리 편하다. 그냥 오늘은 빠에야, 빵, 와인 그리고 후식이다. 춥고 배고프고 힘든 하루의 여정에서 행복이 찾아 온다. 빠에야의 맛도 맛이지만,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와인 한 두병이 추가되고 노래가 곁들여진다.
이태리 아줌마가 '벨라차오 Bella ciao~'(다행이 파르티잔의 노래를 나도 조금 알고 있었다)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스페인, 이태리, 독일, 미국, 한국, 그 밖의 나라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한다. 한국식으로 살리고 살리고 하면서 각자 나라의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그래봤자 9시 조금 넘은 시간^^) 함께 한 후 우리는 내일의 여정을 위해 다리를 절뚝거리며 2층 방의 2층 침대의 2층 칸으로 힘들게 기어올라간다. 아이구 삭신이야~!!! 오늘은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 지금까지 길 중에 가장 힘든 날이었다.
경치는 너무 아릅답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러나 내 몸은 너무 버겁다. 이러다 한국 가서 못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도 된다. 
카이도스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내가 그냥 가자고 하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춥고 배고프고 너무 힘들고... 눈물이 난다. 아직 갈 길이 먼데 거리가 추가됐다. 나약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을 괜히 뚠에게 툴툴거린다.
추운 곳에서 떨면서 먹은 빵이 체했는지 미식거리고 답답해서 식은 땀을 흘려가면서 걷는다. 몸에서 치즈 냄새가 난다. 모든 기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티를 낼 수가 없다. 몇 번이나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뚠이 아프다는 소릴하지 않는다. 고맙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이 장엄하다 못해 스산한 길을 나 혼자서는 못 걸었을 것 같다.
같이 노래도 부르고 힘내라고 하면서 겨우 아헤스에 도착해서 셰마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이란... 불쌍했는지 배낭을 2층으로 옮겨다준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바닥을 못으로 찌르는 것 같다. 으악 침대 위를 올라가는데 못 판을 걷는 느낌이다.
너무 준비없이 왔다. 그동안 몸은 돌보지 않고 죽어라 머리만 쓰다 그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이곳에 왔는데, 이 곳에선 또 오랜동안 방치되었던 몸이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갑자기 혹사를 당한다. 미안하다. 그런데 머리는 너무 맑고 명료하다. 서울에선 며칠 전 아니 바로 전에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내 몸이 어땠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때가 많았는데 이 곳에선 모든 순간이 다 생생하다. 온 몸의 감각과 정신이 한 곳으로 일치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몸의 고통도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힘들다. 하루 사이에 바지가 헐렁거린다. 빨래를 짤 힘도 없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자꾸 눈물이 흐른다. 한국에선 성당도 잘 안 가는데 여기서는 힘들어도 성당을 찾아 가려고 하는 우리들이 웃기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만 하느님을 찾게 되는 어리석은 내겐 고통이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통로인가부다. 그러나 몸이 조금이라도 괜찮아지면 바로 딴 짓이다.
이 길은 내 의지가 아니라 그 분이 허락해야만 갈 수 있는 길이다. 어쩌면 끝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 안에서 내 의지를 포기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