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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3 - 사아군에서 엘부르고라네로까지 (4월 2일, 약 20km)

잠못이룬 사아군의 하룻밤은 불쾌하기 그지없다. 아무런 미련없이 사아군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 뭔가 특별한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작은 배려가 아쉬었던 어젯밤이었다.

사실 사아군은 대단히 멋있는 고대 건축물이 그데로 남아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별 미련없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래된 도시의 석조블럭을 밟으며 화살표를 따라 길을 계속해서 걸어간다. 도시의 끝자락의 수도원 건물 앞에 산티아고의 지팡이와 조롱박 앞에서 그래도 사진 한장을 남기고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도시 외곽의 리조트를 지나니 세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온다. 국도를 따라 계속 걷다보니, 로타리에 버스정류장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갈림길이다. 두개의 루트중 선택을 할 수있다. 경유하는 마을도 다르고 길의 형태도 완전히 다르다. 만시야까지 가야만 두 길이 하나로 합쳐진다. 우리는 왼쪽편 길인 도로를 따라가는 길(약간 여정이 짧다)로 일정을 잡았다.

고속도로 옆의 간이도로를 따라 계속 길을 가니 길 옆으로 토목공사가 한참이다. 중장비가 즐비하며 간혹 길이 끊기기도 했다. 날리 는 먼지를 피하며 길을 재촉해 보지만 일자로 뻗은 길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간혹 자전거 순례자만이 우리를 앞지르며 지나간다.

11시 30분 경이 되어서야 첫번째 마을인 베르시아노스에 도착한다. 자기집 베란다에 까지 산티아고 성인의 동상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마을의 규모는 제법되지만 사람은 거의 없다.
멀리서 마을이 보여 화장실 생각에 마구 달려가서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었지만 바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마을 광장 인근에서야 바를 찾을 수 잇었다. 바에 들어가니 독일인 부녀 콘스탄츠와 노버트가 앉아있다. 서로 방갑게 인사를 하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시간도 시간이고 더이상 중간에 마을이 없기에 여기서 점심을 주문하고 먹는다. 오늘은 제법 서늘해서 따스한 차와 보까디요를 주문해서 조금 여유있게 휴식을 취해본다.

우리 앞으로 콘스탄츠와 노버츠가 걷는다. 콘스탄츠(딸)은 이태리에 살고 있고 노버츠(아버지)는 캐나다에 살고 있다. 두 부녀는 딸의 휴가에 맞춰 길을 걷고 있다. 이전에도 이 길을 아버지는 완주한 적이 있지만, 딸과 함께 시간이 날때면 조금씩 조금씩 걷는다. 일요일인 내일까지 길을 걷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한참을 걷다 보니 멀리 엘부르고 라네로스라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 초입은 공사로 인해 바람에 엄청난 먼지가 날리지만 조심스레 걸어 마을로 들어간다. 여느 마을 처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다. 마을 초입에서 한참을 들어가니 광장 어귀에 작은 흙과 돌로 만든 2층집 알베르게가 눈에 들어온다.
2시가 채 안된 시간이지만 일단 접수를 한다. 기부금 함에 적당한 요금을 내고 2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짐을 푼다.

간단하게 정비를 하고 가게에 가기 위해 마을을 둘러본다. 원래 오늘은 저녘을 마을 앞 식당에서 사먹으려 했지만 독일인 부녀가 파스타를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먹겠냐고 제안을 해온다. 감사하다며 나는 와인을 사겠다고 했다. 와인과 후식으로 케잌과 과일을 산 후 마을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활짝 만개한 벚꽃을 보니 한국생각이 난다.

 우리들의 만찬은 이렇게 식작됐다. 다른 순례자들이 한두명은 각자 자신의 요리를 하고 우리는 파스타 요리를 한다. 주방의 화력이 별로 좋지 않아 조리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맛있는 저녁이었고 엄청 푸짐했다.
사아군의 불쾌함이 두 부녀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 기분 좋아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