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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4 - 라네로스에서 레온까지 (4월 3일, 37km-실제 18km)

어제 만찬을 함께한 멤버들이 이른 아침 길을 나서기 전에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러나 이 길에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거 아마 카미노가 나에게 던져 준 가장 소중한 것인 듯하다.

엘부르고 라네로스 - 렐리에고스 - 만실리아 - 레온

섬머타임이 적용된 이후 햇빛이 비추기까지는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다. 출발을 하기전 김여사에 강요에 의한 스트레칭 그리고 언제 부턴가 처음 걸음을 디디며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 외곽에는 작은 습지가 있다. 습지의 한기와 새들의 울음소리가 오늘은 갈 길이 머니 얼릉 가라고 이야기 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주말이 되면 긴장을 하게 된다. 가게나 식당들이 문을 열지 닫을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특히나 큰도시가 아닌 작은 마을에서는 더더욱 긴장하게 된다. 아직 가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과 스프가루 등이 남아있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조금 앞서 가던 독일부녀을 금새 추월한다. 마지막으로 '부엔카미노'를 외치고 지나간다. 오전에는 우리의 걸음이 생각보다 빠르다. 오후가 되면 절반의 속도로 늦춰지지만.... 

전형적인 시골길의 모습이다. 2차선 차도 옆의 갓길로 순례자의 길이 이어지고 차도로는 차한대 지나가지 않는다. 발목이 편하려고 차도로 걷다가 간간히 지나가는 차가 오면 순례자의 길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아침 이슬에 촉촉히 젖은 길에 하늘은 온통 지푸리고 있다. 비가 올까 걱정도 되지만 한기가 몸속으로 느껴진다. 걸으면서 얻는 몸의 열기와 외부에서 전해지는 한기가 교차되면서 옷의 내피는 습기를 한껏 머금고 있다.

한참을 걷다보니 왼편 어귀에 비야바르코라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에 들러 차 한잔 마시고 가고 싶지만 한참을 들어가야 나올 마을이다. 그냥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간다.

걷는 길 내내 사방으로 흰 설산들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피레네가 그리고 동쪽어귀에도 설산이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인 레온 뒤편으로도 레온산맥을 끼고 있는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저 설산의 귀퉁이중 하나를 넘어야 할 거 같다.

차도를 따라 길을 걷다 욕심이 생긴다 이쪽으로 가면 길을 조금 단축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마음에 차길에서 떨어진 길로 안쪽길을 택해 가다 보니 길이 끊겨 있다. 원래 가던 길은 기차길을 피해 터널을 걸어 갈 수 있는 거 같아 보인다. 돌아가려다 힘들고 지쳐서 그냥 철길 무단횡단을 결심한다. 그렇게 철길을 넘어 길을 건너니 아래편으로 내려가기 조금 막막한 곳에 오르게 됐다. 그래도 다 길은 있다.

표지석도 없는 길을 마냥 걸어건다. 걷는 동안 김여사는 반지가 없다고 한다. 보통 알베르게를 나올 때 바닥까지 살펴보고 나오는데 오늘은 왠지 이상하다. 아마 가방을 뒤지면 나올꺼라고 안심을 하며(몇번 잃어버린 물건 안경이나 뭐 그런게 다 가방에서 나왔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찾아보자고 했다.
황량한 길을 계속 걸으면서 지쳐갈 무렵 언덕을 넘어서니 렐리에고스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들어온다. 하루 종일 찌푸린 하늘에 몸에 온기가 필요하다. 마을 중앙으로 들어가니 특이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낙서(창에 비쳐진 두개의 눈)가 인상적인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1층은 바를 운영하고 있다. 각국의 지도가 걸려있고 벽면에는 한국낙서도 즐비하다. 따뜻한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 잠시 화로에서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를 한다.

렐리에고스를 벋어나 차도를 옆길로 한참을 걸어가니 길이 끊기고 고가도로가 나온다. 고가도로를 넘어가야 만시야ㅐ에 들어갈 수 있다. 제법 차가 다니는 길이라 조심해서 만시야로 들어간다. 
길을 걸으면서 오늘은 만시야까지만 걷고 레온까지는 버스를 이용해 스킵하기로 했다. 웬지 큰 도시가 앞에 나오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단 인파와 건물이 몸을 힘들게 한다. 더욱이 문명이 가까이 온다는 느낌이 맘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만시야에 들어가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버스시간이 맞지 않는다. 일단 버스정류장에서 맥주한잔을 시키고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맥주를 다 마시기도 전에 택시가 도착해 레온까지 18킬로를 달려간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택시에서도 간간히 보이는 순례자들만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걷는 사람을 보면 반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지만.. 일단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은 아 몇킬로가 이렇게 긴 거리인가 하고 세삼 놀라게 한다.

구시가 초입 성벽에서 내려 알베르게를 찾아 들어간다. 광장인근에서 조금 헤메다 베네딕트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산타마리아 알베르게에 들어간다. 수도원건물과 함께 있는 이곳에서 등록을 하고 짐을 푼다. 일단 짐을 풀고 반지를 찾아 보았지만 반지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 어제 묵은 곳에 놔두고 온것이 아닌가 해서 오스피딸로에게 연락을 부탁해 보았다. 스페인어와 영어의 한계 속에 상황을 설명하니 알베에 연락해서 놓고 온것이 맞으면 자전거순례자 편으로 받을 수 있으니 연락을 해보자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식당구석을 보니 한 동양인 청년이 쩔뚝거리고 있다. 뭐 동양인이면 일차 '한국분 이세요' 하고 물어보니 '안녕하세요'하고 답을 한다. 젊은 친구를 보니 방갑다. 다리 상태가 안좋아 일행과 떨어져 먼저 기차를 타고 이곳에 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커플링을 분실했지만... 산티아고길 내내 먹고 싶었던 햄버거(사실 화로에 구운 고기를 거의 먹지 못했다. 은근히 이 햄버거란 놈이 상당히 땡긴다.) 로그로뇨에서는 지나쳤고 부르고스에서는 찾지 못했던 버거킹을 찾아간다. 따스한 햄버거 거의 짜장면 같은 맛이다. 스페인에서는 버거킹을 버거킹으로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 몇번 시도했지만 결국 허사, 브루고킹 정확한 발음은 나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엄청 굴리면서 부르고킹을 말하면 10명중 2-3명은 알아 듣는다.
숙소 인근에 아까 그 한국청년이 보이기에 맥주한잔 하자고 꼬셔서 맥주 한두잔을 먹는다. 각자의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 여정 중의 스토리를 풀자니 이야기가 조금 장황해진다.

레온의 구시가 광장을 조금 돌아보다 알베르게로 들어간다. 몇몇 아는 사람들 줄루와 몇몇 친구들이 보여 인사를 하고 스페인어가 가능한 독일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반지이야기를 하는데, 일단 전화가 안되니 내일 더 묵으면서 연락해 보자고 하신다. 뭐 하루 더 쉴 수도 있지 하며 조금 마음을 비운다. 이야기를 끝내고 또다른 한국인 서정씨도 만나서 인사를 했다. 스페인에서 잠시 공부를 하고 오늘 레온에서부터 카미노를 시작하려 한다고 한다. 침낭도 없고 준비가 조금 허술하다. 간단한 조언을 하고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거 라면스프와 건조김치만 조금 나눠주고 침낭이 꼭 필요할 거라고 이야기 해준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 나선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메뉴를 시켜 먹는다.

 이 알베르게는 매일 저녁 수녀원 예배당에서 순례자 축복기도가 열린다. 정말 성스러운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기도회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나이 지긋한 수사와 사제님들의 기도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로마시대 군대의 주둔지였지만 지금은 커다란 도시로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레온의 밤은 소란스러웠다. 늦은 밤(주말)까지 술집의 소리가 창 밖으로 들려온다. 창을 닫아야 할거같은데 영국인 처녀 미야가 냄새가 난다며 좀 열어 놓자고 한다. 그래도 소음이 너무 심해 내가 그냥 닫아 버렸다. 
그렇게 레온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