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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7 - 아스트로가 (4월 6일, 휴식, 라네로즈로 갔다오기)

우연한 이유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되었지만, 실제 자신이 걸은 길을 복기하는 것은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운 일인 것 같다. 내가 힘들게 걸어온 길을 차를 타고 지나치며 보는 것은 그저 그 거리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길 속의 느낌의 되새김질 같은 것이다.

 버스정거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7시 첫차를 타기 위해 조금 서둘러 나왔다. 인적도 없는 구시가를 걸어서 버스터미널을 찾아간다. 썰렁한 버스터미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첫차가 올때즘 터미널 문이 열린다. 레온까지 표를 사고 버스에 탄다. 버스에 올라 차창사이로 어제 내가 걸어온 길이 오른편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1시간여를 달려 레온에 도착한다. 버스터미널과 붙어있는 기차역으로 가서 라네로즈로 가는 기차표를 구매한다. 1시간 3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는데 정시가 되어도 기차는 오지 않는다. 유럽의 보통 기차는 정시에 열차가 잘 오는데 스페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원래 시간보다 20여분 뒤 기차는 왔고 또 1시간여를 달려 라네로즈역에 도착한다.
라네로즈 기차역에서 알베르게에 가니 오스피딸로가 보이지 않는다. 알베르게 앞 바에 차와 음식을 먹고 있는 오스피딸로의 모습이 보여서 가보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다행이 김여사의 반지를 가지고 잇었다. 감사의 뜻으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식사비용을 지불해줬다.
그런데 한참 오스피딸로와 이야기를 하는데 앞테이블에 동양인 젊은청년이 멀뚱이 책을 보고 있다. 옷을 보니 한국메이커다. 한국분이시네요 하니 '네' 하고 쌩이다. 허걱...
좌우지간 이제 아스트로가로 가야한다. 문제는 기차는 4시간 뒤에 있고 버스는 없다. 일단 택시를 타고 만실리아까지 가기로 했다. 만실리아에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레온에서는 다시 아스트로가로 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이다.
만실리아로 가는 길에 많은 순례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정말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도 걷는 것이다. 4월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걷기도 하거니와 산티아고로 가면서 단기간의 순례자가 늘어난다지만 정말 2-3일차로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다행이 만실리아에서 레온으로 가는 버스 시간은 제법 맞아 떨어졌다.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가는데 길 중간에 순례자 두분이 탑승을 하신다. 동양인 한분과 독일인 한분. 당연히 한국분이냐가 먼저 이야기되고 대화를 한다. 한참 이야기 하다 보니 이 한국 여자분은 내가 네이버 카미노카페에서 만났던 분이다. 너무 얼굴이 타있으셔서 알아보지 못한거다. 서로 웃으며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어느새 레온에 도착했고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레온 버스텀미널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아스트로가로 출발을 한다.

택시를 이용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빨린 아스트로가에 도착했다. 1시 10분쯤 도착해서 다시 성안의 구시가로 들어간다. 알베르게에 가보니 오스피딸로가 변경된 방을 알려준다. 김여사는 생각보다 일찍와서 조금 놀란 눈치이다.
반지를 건네주니 기뻐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2인실을 둘이서만 쓰게되었다. 친절하게 배낭까지 옮겨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물관이랑 이런데 무료입장권까지 챙겨주며 가라고 안내해 주더란다.
일단 상황보고하고 둘이서  마을 관광을 나선다.

카떼드랄 광장에서 잠시 어디어디를 들어가 볼까 고민을 했다. 김여사는 이미 산타마르타 성당은 다녀았다고 한다. 가우디의 건축물이며 카미노와 관련된 카미노박물관에 일단 가보기로했다. 박물관은 2시부터 열어 조금을 기다려 입장료를 내고 가장 먼저 입장을 하게되었다. 입장료를 냈다는 이유로 각층을 다 오르고 내리며 나름 꼼꼼하게 구경을 하고 나왔다.

아스트로가는 꼼꼼하게 구경을 하면 볼거리가 참 많다. 하물며 작은 건물 하나마다 소박한 박물관으로 꾸며 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코렛박물관(사실 작은 2층집)도 가보았다. 그냥 오래된 가가손손 내려온 초코렛가게로 생각하면된다. 하지만 입장료를 받는다. 나오는 길에 도움을 준 오스피딸로에게 줄 초코렛도 하나를 샀다.

저녁은 함께 해먹기로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본 후 플라자광장의 아웃도어매장에 들러 스틱을 1조를 샀다. 그다지 좋지 않은 물건이지만 대안이 없다. 이 아웃도어 매장의 상징이 된 큰 배낭을 보니 그저 허탈한 웃음이 난다.

밥을 해먹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고, 나름 피곤해서 나는 간만에 낮잠을 즐긴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에 있어도 그저 자는게 최고가 되어버렸다. 금강산은 식후경이고 식사도 몸이 편하고 나서인것 같다.

김여사가 빨래를 하는동안 나는 밥을 하고 야채를 볶아 만만한 야채볶음밥을 만든다. 여기에 고추장 그리고 나의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줄곳 가져온 남은 미역국을 끓인다. 신선한 샐러드와 와인 고추장이면 그저 만족스럽다. 어차피 내일은 밥을 사먹어야 하니, 오늘 둘이서 오븟하게 생일 파티를 한다.

저녁을 먹고 빨래를 걷고 둘이서 맥주를 먹으러 플라자광장으로 간다. 스페인의 카페는 술을 주문하면 간단한 안주거리인 타파스를 그냥 주는 곳이 많다. 다행이 이곳도 타파스를 줘서 안주삼아 술을 먹는다. 노천카페에 앉아 술을 먹으며 지금까지의 여정도 정리하고, 어제 싸운 앙금도 정리하고, 반지 찾은 이야기도 나누면 조금씩 취해간다.
술을 더먹고 싶은데 알베르게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되어 간다. 더 먹고 싶다니 김여사가 사오겠단다.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아 바에 가서 병맥주를 사왔다. 둘이 방에서 조금씩 훌쩍 거리다. 잠에든다.

* 김여사가 방문한 박물관에서 촬영한 성상과 성화들 중 일부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