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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8 - 아스트로가에서 폰세바돈까지 (4월 7일, 31km)

해발 1450미터 위의 산봉우리에도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 있다. 지금은 폐허처럼 남루한 이곳에 몇개의 알베르게들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겨울이 되면 허리춤까지 눈이 쌓이는 곳이지만 순례자들은 묵묵히 이곳을 올라온다. 목적지 그리고 가야할 목표가 정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인것 같다.

오늘은 산티아고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을 걷는다. 해발 1500미터까지 오르막이 이어질걸 예상하고 조금 서둘러 길을 나선다. 그래도 이미 8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의 출발이라 피레네를 넘을때 같은 두려움은 없다.
이른 아침 아스트로가의 오래된 돌블럭길을 스틱소리를 내며 따각따각 걸어서 어두운 아스트로가의 도심음 지나간다.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한기가 덜하기에 마을외곽 벤치에서 잠시 내피를 꺼내 가방에 넣고 다시 길을 걷는다.

차길 옆으로 난 순례자용 길을 걷다 보니 작은 교회가 나온다. 에체호모라는 작은 예배당 입구에는 여러나라 말이 적혀 있는데 기분 좋게 한국말도 적혀 있다. '신앙은 건강의 샘' 잠시 예배당에 들러 기부금을 내고 간단하게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며 스탬프를 찍고 나온다.
교회 밖에는 학교를 가는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신기하게 동양인 순례자를 처다본다.

차도 옆 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멀리 순례자들도 보이고 간혹 조깅을 하는 마을 주민들도 눈에 들어온다. 선선한 아침바람에 어제 하루의 휴식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길을 걷는다. 생각보다 걸음이 빠르다.

어느새 첫번째 마을 무리아스 레 치발도스에 도착을 한다. 점점 순례자들이 늘어나는게 눈에 띠인다. 우리가 조금 천천히 걷고 있어서인지 낳익은 사람들이 적다. 대부분 새로이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마을로 가니 몇개의 알베르게가 바를 겸하고 있는 듯 했다. 9시도 안된 시간이라 들어가서 쉬기도 그렇고 그냥 지나치고 길을 걷는다.

마을을 지나니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르지 않지만 일자로 된길에 앞뒤로 순례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묵묵히 그냥 걷는다. 김여사는 어제 새로산 스틱이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거 같다.

언덕을 넘어 한참을 걷다 보니 산타 카탈리나 데 소모사라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10시가 되지 않은 생각인데 부지런히 걸어왔다. 마을 안쪽에 길가에 있는 바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다. 순례객이 지나가는 통로에 내 놓은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미 여러명의 순례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또 지나가는 사람마다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지나간다. 몇일전 패트릭때문에 알게된 마리아도 지나가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제 한낮의 더위를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선크림을 바르고 외투도 가방에 집어 넣고 다시 길을 걷는다.

약 5킬로를 더 걸어서 올라가니 엘간소라는 마을이 나온다. 12세기에는 수도원과 순례자 구호시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치 폐허같은 모습이다. 카우보이 바가 유명하다고 해서 들러보려 했는데 문을 닫았다. 물을 보충해야 하는데 물을 넣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중간 중간 담벼락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황량한 엘간소의 오래된 성당 문은 닫혀 있지만 담벼락에 앉아서 포즈를 취해본다. 이곳에 앉아 있자니 역시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부엔 카미노' 오늘 많이도 외친다.(이전에 사람이 넘 없었기 때문이지, 지금 그리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다.) 이곳이 과거에는 고야의 그림에 나오는 마라카토의 마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것 같은 외진 곳이다.

한적한 산길 차도로 차한대 지나가지 않고 산도적만 나올거 같다. 길 옆으로 순례자용 흙길은 잘 정릳되어 있다. 푼토봉의 철십자까지 이런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돌길을 걷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다.

 

넓은 들판은 어느새 사라지고 숲길이 이어진다. 봄이 다가오지만 가을의 냄새만 물씬나는 숲길을 걷는다. 작은 언덕을 오르면 다시 또 다른 언덕이 나오는 길을 따라 걷는다.

산티아고 길에서 철조망으로된 팬스가 나타나면 어김없이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들이 즐비하게 곶혀있다. 각자의 이야기들을 이 길에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오래된 나뭇가지가 말라서 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또다른 나뭇가지를 꽂아 놓는다.
숲길을 지나 길을 가다 파뇨테다리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과일을 먹었다. 한두명씩 순례자들이 다가온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이 보인다.

어느새 라바날 델 카미노가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아라곤산길에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12세기 탬플기사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일단 초입의 바에서 점심을 먹고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몇가지 점심메뉴를 주문하고 밥을 먹는다. 오늘 이 마을에서 쉴 경우 내일 일정이 조금 힘들거 같아 더 걷기로 했다.

 마을을 지나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물었다. 과일을 사려다 너무 비싼 가격에 팔고 있어 하드 하나씩만 물고 길을 걷는다. 마을을 벗어나는 길에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아저씨를 만났다. 리어커를 허리에 달고 길을 걷는데. '부엔 카미노!'하고 인사를 하자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꼬레아' 라고 답하니 아저씨가 '메이드 인 꼬레아'라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 세운다.. 그래 우리도 한국산이지, 한참을 웃었다.


라바날에서 폰세바돈으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험하다. 6km 정도를 올라가는 동안 해발 350미터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걸으면 걸을수록 오늘 하루종일 걸어온 마을들이 발밑 아래로 멀어진다.
스위스에서 왔다는 도리스는 헉헉 거리며 계속 걷는다. 그래도 우리가 조금더 씽씽한거 같아서 앞질러 길을 걷는다.

들판에는 봄꽃들이 하나둘 피면서 봄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봄의 기운보다 오르막을 오르는 내내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어진다. 차길을 따라 구불어진 길 양 옆 틈사이로 사람들의 길이 지그재그로 엉켜져 있다. 그냥 차길로 갈가 고민을 하다가도 그냥 가라는데로 걷자라고 생각하며 길을 따라 걷는다.

예전에는 나귀나 말을타고 다녔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간간히 보인다. 새로이 만들어진 순례자용 쉼터도 보이지만 벌레만 윙윙 거릴 뿐 쉴만한 곳이 아닌듯 하다.

차도옆 숲길을 계속 걸어 오르면 흐르는 물에 진흙진 곳도, 잠시 쉴 수 없을 거 같은 그네도, 자갈이 가득한 벅찬 길도 나온다. 꾸역꾸역 오르면서 산정상이 보이는 곳까지 오르고 오르는 수 밖에 없다. 우쒸 오늘 내 생일인데..

3시가 조금 지나서야 폰세바돈이 보이기 시작한다. 라바날에서 이곳까지 2시간이상을 힘들게 올라왔다. 허벅지가 땡기는 걸보니 오르막이 심했나 보다. 그래도 오늘의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한거 같다.

산꼭대기의 이 마을은 완전 폐허같은 마을이었다. 초입에 있는 산장같은 레스토랑과 알베르게를 같이하는 곳으로 들어가니 주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걸었는데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나름 시설도 깔끔하고 주인이 좋아보인다. 지하의 공간에 짐을 간단히 풀고 샤워 후 파스를 들고 바에 올라가 맥주를 주문해 마신다.
밖으로 나가보니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경치를 즐기며 서로 맨소레담 마사지를 하자니 한 젊은 커플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남여 모두 근육질의 커플이라 이후 우리는그들을 스페인 머슬커플이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경치의 산장분위기 바에서 순례자용 메뉴를 주문하고 둘이서 밥을 먹는다. 이 큰 식당과 알베르게에 손님은 우리 둘뿐이다. 따스한 스푸와 맛있는 식사를 먹고 아저씨가 주신 몇권의 앨범을 보자니 이 마을 사진이 가득하다. 겨울이 되면 이곳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상상만으로도 감동이다.
저녁을 먹고 마을 뒤편을 걷다보니 마리아가 보인다. 대부분 알베르게 몬테이라고에 묶고 있다고 한다. 함께 공동식사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냥 오늘은 둘만의 오븟함도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석양을 바라보며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둘이 앉았다. '바람이 분다~~~' 분위기 한참 잡는데 소가 뛰어오고 개가 짓는다. 산위 정상의 석양보다 살아있는 생명의 이야기가 더 아름다웠다. 생일이니까 라고 우기며 숙소로가 술을 조금주문해서 먹고 잠에 든다. 우리 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