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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29 - 폰세바돈에서 폰페라다까지 (4월 8일, 30km)

산티아고길에서 가장 높은 곳(1505m)에 위치한 철십자가! 전세계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돌을 가져와 하나씩 이곳에 놓고 갔다고 한다. 보기에는 단조로워 보이지만 지금은 산티아고길의 상징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목적지에 가면 자신의 화두를 찾을 거 같았던 많은 사람들은 아마 20-30여일을 걸어 이곳에 도착할 즈음 차츰 자신의 화두에 답을 찾아가기 시작할 것 같다.

폰세바돈 - 철십자가 - 만하린 - 푼토봉 - 아세보 - 리에고 데 암브로스 - 몰리나세카 - 폰페라다

일출을 보기 위해 조금 이른 출발을 준비한다. 산의 정상에 가까운 숙소라 한기가 제법 느껴진다. 아침녁의 바람마저도 조금은 거칠게 불어온다. 오늘은 먼길을 걸어가야한다.

폰세바돈의 뒤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일출전이지만 미명에 시야는 어둡지 않다. 아직 순례객은 보이지 않는다. 마을 뒤산을 올라서 조금 걸어가니 조망 포인트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고 있다. 

 

얼마 걷지 않아 푸에르타 이라고의 철십자가(라 쿠르제 데 페로)가 보인다. 다큐멘타리와 많은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그곳이다. 기대와 달리 장엄하기보다 소박하게 보인다. 옆에 있는 석조예배당 에르미타 데 산티아고는 닫혀 있다.
사실 일출을 이 철십자에서 보리라 생각했지만, 구름에 일출도 보이지 않는데다 언덕을 넘은 후로는 일출을 볼 수 없는 장소였다.

원래 한국에서 돌을 가지고 오려 했지만(각국의 돌이나 기억할 것들을 이곳에 두고 간다.) 우리는 우리들의 조카들의 이름을 이곳에 남기기로 했다. '현정 현서 현모 완조 건강해라!' 이 아이들 중에 누군가 이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면 행복할 꺼 같았다. 특히 아직도 투병중인 현모가 이곳에 와 볼 수 있기를 빌어 보았다.

철십자에서 내려오니 덴마크인 한나와 호주인 마리아 그리고 노르웨이 할머니 베리츠가 철십자로 올라서 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의식을 차리고 있다. 멀리서 인사를 하고 뒤돌아 사진 몇장을 찍고 우리는 서둘러 길을 내려간다.

산속의 숲길을 따라 내려간다. 왼편으로는 레온산맥의 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아무도 없는 숲길을 둘이서 조용히 걸어간다. 왠지 모르게 이 산길을 걷고 있자니 가슴이 뿌듯하다.

좌측으로 시야가 확트인 길이고 그 트인 시야로 산과 들판 그리고 숲이 가득하다. 사진에 담기에는 그 상쾌함이 보여지지 않는다.

언덕을 내려와 차도와 접한길을 걷다 보니 몇 채의 부서진 집을 지나 유명한 만하린의 알베르게가 나타난다. 우물을 길어 물을 사용하고 화장실도 물론 푸세식이다. 알베르게의 관리인은 스스로를 탬플기사단이라 칭하며 코스프레를 하고서는 순례자를 맞이하는 곳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 코스프레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만하린을 지나자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푼토봉까지 이어진 길에는 방목되어진 소들이 즐비하다. 소의 목에는 카우벨이 달려있고 여기저기서 딸랑거린다. 가파른 산모퉁이가 위험스러워 보여도 자연스레 여기 저기 풀을 뜯는다. 우리에 갇혀 평생 키워지는 미국산 소와는 뭔가 달라도 달라 보인다.  

푼토봉에서 아세보마을까지 가는 길은 제법 급한 경사를 따라 내려간다. 여느 산길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차도가 옆에 있지만 간혹 숲길로 산길로 방향을 안내한다.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화려하지만 길을 걷는 사람은 쉽게 지칠 만 하다. 더욱이 오늘의 목적지 처럼 보이는 마을들이 멀리 시야의 끝에 그려지는데 저기까지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입에서 '스펄 스펄'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풍경이 주는 경건함도 피곤에는 장사 없는가 보다.

어느새 쉴만한 쉼터가 있는 아세보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은 가파른 급경사에 자갈길이라 조심하며 내려간다.
산속에 있는 마을이지만 주민들도 제법 사는 듯한 산속의 이쁜 마을이다. 마을의 교회 앞의 바가 문을 열고 있기에 들어가서 커피와 맥주를 주문하고 쉰다. 한두명의 순례자가 더 들어온다. 이제는 익숙하게 주문하고 익숙하게 먹는다.

길을 나서려하는데 마을광장에는 한무더기의 자전거 하이킹 그룹이 모여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자전거 동호회같은 사람들이 산악자전거를 즐기는거 같다. 순례자들도 한두명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내려 가야 할길은 멀고 험하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로 내려오면서 점점 식생이 더 변해서 점점 숲의 모습을 갖춰간다. 김여사는 내리막에서 여간 힘들어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벚꽃이 피고 이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지만 일단 폰페라다까지 가기로 일정을 정한 터라 이마을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도로 우회하기로 했다. 마을의 바에서 시원한 맥주를 먹고 싶었지만 일단 몰리나세카까지 걷기로 한다.

몰리나세카가지 가는 길은 차도에서 벗어나 완전한 숲길로 산을 내려가게 된다. 마리아와 북유럽의 친구들 특히 라네로즈에서 인사를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욜리아저씨도 열심히 길을 걷는다. 7부 바지를 입구 걸어가는 욜리아저씨는 이미 몇차례 이 길을 걸으신분이다. 말수도 없이 조용히 홀로 길을 걷는다.

숲길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순례자들을 앞지르기도 하고 뒤쳐지기도 한다. 각자의 쉬는 장소와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얼굴이 익혀지고 똑같은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부엔 카미노'를 외치게 된다. 튼튼해 보이던 스페인머슬커플도 지친 모습을 하고 길에 쉬고 있다.

 어느새 몰리네세카에 도착한다. 멀리서 보았을때는 몰랐지만 마을 초입에 메루엘로강의 순례자 다리를 지나자 제법 큰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변의 노천 바에 마리아를 비롯한 순례자 그룹이 모여서 뭔가를 주문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왠지 그늘진 곳으로 가려고 마을을 가로지른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가 문을 열고 있기에 과일과 탄산음료 그리고 먹거리를 조금사서 그냥 벤치에서 먹기로 한다.
막상 먹을 것을 사고 보니 그늘 진 벤치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마을 외곽까지 걷다가 라일락향 가득한 부자집 대문앞에 좌판을 깔고 앉았다. 그냥 바에서 쉴껄 하는 생각이 든다.
앗 오랫동안 안보이던 독일처녀 피아가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한다. 서로 안부를 묻고 몇마디 나눈다. 초반부터 알던 사람이라 너무 반갑다.

폰페라다까지 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일단 차도를 따라 계속 걷는 길이며, 뜨거운 햇살과 경사를 감안한 30여 킬로의 걷기는 치력이 감당을 못한다.
폰페라다 외곽의 커다란 별장형 주택단지에서는 개에게 놀라고 도시의 외곽에서 진입해서는 길을 헤메며 알베르게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본다. 대부분 잘 알지 못하고 카미노마크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렵사리 물어 물어 도착한 알베르게 니콜라스 데 플뤼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다. 카르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교구 호스텔이지만 현대적인 건물에 넓은 정원을 갖춘 아름다운 곳이었다.

8인실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오늘의 노고를 서로 치야하자며 가방에 숨겨두었던 라면을 먹기로했다. 비상식량으로 신라면스프와 현지에서 중국식라면을 구입해서 끓이는 것이다. 찬장에 쌀이 남아있기에 밥도 해서 말아 먹는다. 라면이 최고야!
간단한 세탁물들은 세탁을 하고 잠시 각자 휴식을 취한다.
시에스타가 끝날 무렵 인근 마트에서 과일과 인스턴트 빠에야를 사서 밥을 먹는다. 알베르게에 주로 스페인사람이 많아서 조금 낯설어 하는 동안 인도계 여자 한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뒤 사람들이 정원에서 나이 지긋한 분에게 마사지를 받고 계신다. 봉사활동으로 순례자에게 다리 마사지를 하시는 것이란다. 김여사는 마사지를 받고는 좋다고 나도 받으라는데 지금 내 다리 상태는 누가 건드리는 것 자체로도 넘 아프니 안받겠다고 실랑이를 한다. 김여사의 권유로 나도 받았다. 그저 톡톡 치듯이 발 마사지를 하시는데, 지압식 마사지가 아니라 기공마사지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꽤 괜찮았다.

 

 알베르게 한쪽에는 교회가 딸려있다. 저녁무렵 교회와 관련된 설명회 같은 것을 진행한다기에 가보았다. 스페인어로 설명을 하면 영어를 하는 순례자가 통역을 하는 방법으로 천장의벽화 이야기부터 이런저런 카미노의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알아들은 것은 절반도 안되지만 모두들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재미난 자리였다.
방에 들어와 잠에 들까 하는차에 누군가 코레아노를 찾는다. 밖으로 나가보니 스페인에 머무는 한국분이 혹시 도움이 될것이 없을까 하고 찾아오셨단다. 여기서 지압과 침을 하신다는데 마음은 감사하고 고맙지만 오늘은 잠이 더 필요해 짧은 인사만을 나누었다.  이 길에 한국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가는 길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사람 중에도 우리는 거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간만에 큰도시로 와서인지 스페인 사람이 많아서 인지 금요일 저녁이라서인지 저녁 늦게까지 바깥은 시끄러웠다. 그래도 피로는 빠르게 잠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