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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

산티아고의 길 38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4월 17일, 12km)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예수님의 제자중 한분인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도시. Santiago(스), Saint James(영)가 묻혀 있는 별의 들판으로 들어간다.

라바코야 - 야영지 - 고소산 - 산사로 산티아고 - 구시가 - 대성당

6시부터 일어나 출발을 준비한다.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까지 동반한채 가방을 꾸리고 호스텔의 입구로 나간다. 길가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 있고. 호스텔 앞의 광장 한편 정자에는 개를 끌고 노숙인이 누워있다. 우리를 보고 개는 연신 짓어댄다.
카미노 여정 중 두번쨰로 헤드렌턴을 모두 머리에 착용해 불을 켠다. 우선 카미노마크를 찾아야 한다. 뒤편 교회를 따라 길을 찾아서 숲길로 접어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숲길의 어둠을 3명의 헤드렌턴만 비추며 길을 걷는다.
스산한 찬바람이 제법 공포감을 심어준다. 내가 앞장서서 카미노마크를 찾아 걸어가면 뒤쪽에서 두명이 렌턴 불을 비추며 언덕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첫번째 마을이 나타났지만 어디 한곳 불이 켜진 집은 없다. 아침의 찬바람과 어둠속을 뚫고 가는 길 혼자라면 결코 걷지 못했을 것이다. 힘을 내서 걷다 보니 공장같은 건물들이 나오고 여기저기 개 짓는 소리만 들려온다. TV방송국과 야영지를 벗어나자 여명이 서서히 비쳐오고 고소산으로 오르는 마을이 어느덧 나타난다.
국도와 연결된 곳 자판기 앞에서 잠시 쉬려는데 인수씨의 상태가 좋지 않다. 상당히 힘들어 한다. 긴장과 추위와 빠른 보폭의 걸음에 탈이 난 듯하다.

 고소산으로 이어진 마을을 따라 올라간다. 여명이 서서히 비추지만 아직은 렌턴에 의존해 길을 걷는다. 어느덧 고소산의 상징물에 도착했지만 후레쉬를 비쳐도 사진이 찍히지 않는다. 일출을 이곳에서 볼 줄 알았지만, 아무래도 일출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 산티아고 시내를 불빛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커다란 도시의 윤곽이 그데로 비춰진다.

고소산에서 내려오는 길. 7시 30분이 되어가니 시야가 트인다. 왼편으로는 리조트와 같은 건물들이 보이고 그중 하나는 지자체 알베르게로 쓰이는 건물이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내려가는데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수백명이 우루르 내려온다.

아이들에 둘러 쌓여 걷자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은 학교가방 같은 가방에 모두들 조가비를 하나씩 달고 왔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련회 같은 것을 온모양이다. 처음에는 단거리 순례를 온 것인줄 알고 우리가 서둘러 앞지르려 했는데, 학교 선생님께 물어보니 숙소에서 부터 구시가까지 그냥 순례자 처럼 걷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과의 레이스를 펼치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어느덧 구시가의 윤곽과 대성당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800킬로를 걸어서 찾아가는 대성당이다. 마음이 들뜨지만 생각보다 산티아고는 큰 도시이다.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8시가 다되어갈 무렵 도시의 안으로 들어간다. 잘 정리된 블럭길을 또각또각 스틱소리를 내어 걸어간다. 짙은 어둠속의 긴장과 아이들과의 레이스를 통해 아침부터 진이 다 빠져 나간듯 하다.

보도블럭에 깔린 카미노의 상징 조가비 마크를 따라 계속 걸어들어간다.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녁에 많은 순례자들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구시가로 들어가 조금 헤메다 보니 어느새 우리 앞에 대성당이 펼쳐져 있다. 무료로 순례자에게 밥을 주는 곳 외에는 순례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오전 9시가 다돼어 대성당의 위용을 보게 되었다.
눈물이라도 흘릴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저 셋이서 꼭 껴앉고 이자리에 왔음에 감사했다.
큰 감흥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감동과 좌절을 길에서 느낀 뒤라  그저 멍하다.
'8백킬로를 걸어서 왔구나'

잠시 숨을 돌리고 콤포스텔라(완주 인증서)를 받기 위해 순례자협회를 찾아 갔다. 10시가 돼야 문을 연다고 하기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서둘러 산티아고에 아침에 들어왔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

10시가 되어 문을 연 순례자협회로 거의 첫빠로 셋이 들어간다. 여권과 크레덴시알을 내고 간단한 질문에 답한다.
'어디서 부터 오셨나요?' '생장피에르포드에서 부터요' '어떤 방법으로 오셨나요?' '걸어서요'
'어떤 목적으로 오셨죠?'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답을 고민하며 걷는다. 영적인 이유, 건강상의 이유, 신앙의 이유 등
내 대답은 신앙의 이유라고 답을 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건가 아직도 모르겠다.

각자 카미노를 완주했다는 증명서(콤포스텔라)를 하나씩 받는다. 우리들의 36일간의 카미노 여정에 대한 증명이라는 이 종이 쪽지가 그다지 큰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길에서 하나하나 받은 스탬프가 그리고 스탬프의 기억이 훨씬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마치 순간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처럼.

일찍 부터 대성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인의 시신에 경배하는 긴 줄에 서기 보다는 그냥 성당의 의자에 앉아 있고 싶었다. 12시의 미사가 되기전에 대성당의 한가운데 셋이 자리를 잡고 가방을 귀퉁이에 둔 채 앉았다.
4월 17일 부터 성주간.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주이며 예수님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날을 기리는 날이라 대주교님이 직접 미사를 주관하신다. 더욱이 특별한 제례의식이 행해진다. 모두들 종려나무를 들고 흔든다. 옆에 앉아 계신분이 우리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나누어 주신다. 잎의 향기가 진하다.
왠지 모르게 이제서야 눈물이 난다. 이자리에 오려고 아침부터 서둘렀던건지.. 그 긴 길을 헤메였던 건지. 우리는 지금 산티아고에서 주님 수난 성지주간을 맞고 있다.

대성당 앞 광장에 선다. 많은 관광객이 어느새 몰려 들어있다. 간간히 순례자들도 보인다. 허름하고 남루한 사람들.. 이제 뭘하지 하는 모습의 사람들이 순례자들이다.

 

정신을 차리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건 사진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렬한 기억이라 사진보다 선명한 기억이 머리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그래도 자랑하려면 찍어야 한다. 자랑할 만 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길에서 만난사람들도 만난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허그를 하며 서로서로 축하한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서정씨를 만났다. 다행이 잘 도착해 있었다. 어제 도착했다고 하는데..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채 시작했지만 소중한 기억이었으리라 믿는다.
또 다른 한국청년도 만나 맥주한잔을 대접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씩씩하게 산티아고로 막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말을 걸어 함께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 욜리 한나 마리아 등등의 북유럽 친구들 다행이 다들 무사히 도착했다. 사실 길에서 미리 이별인사를 했었지만 다행이 다시 만났다. 그저 우연히 골목에서 만나 함께 그 여정의 넋두리를 펼치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피네스테레를 어떻게 갈것인가 이야기가 나왔다.
한나는 걷는다고 하고 마리아는 차를 타고 간다고 한다.
사실 최초의 여정은 우리도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더이상 걷기가 싫어졌다. 우리는 내일 하루를 산티아고에 더 묶고 모레 버스로 세상의 끝에 가겠노라고 난 더이상 걷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충분하다고. enough!

  

오늘 저녁은 한국인 민박에서 한식이다! 산티아고 외곽에 있는 한인민박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제법 중심에서 멀다.
그러나 고향의 밥이 그리웠다. 그리고 영어나 스페인어를 안해도 되는 하루가 필요하다.
'부엔 카미노!'를 더이상 외치지 못하게 된날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아쉬워졌다.